“시끄러워 도저히 살 수가 없다”
생활여건 나빠지며 빈 집 늘어
5년 전보다 인구 13% 감소
집값도 평당 400만원 떨어져
‘정주형 관광지’ 정체성 훼손 우려
언덕을 따라 양쪽으로 늘어선 고즈넉한 한옥이 인상적인 서울 종로구 북촌로 11가길(가회동 31번지). 22일 찾은 이곳은 한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한복 차림의 관광객들로 왁자지껄했다. 대문과 담벼락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이곳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입니다. 쉿! 조용히 해주세요!’라는 현수막과 포스터가 붙어 있었지만 여행으로 한껏 들뜬 관광객들의 목소리를 낮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문 틈 사이로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광객도 눈에 띄었다.
이 골목에서 이날 관광객들을 요리조리 피해 내려오던 한 주민은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 주변이 다 이사를 갔다”며 “30년 넘게 산 우리집도 내놨는데 산다는 사람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서울의 대표 한옥 밀집 지역인 북촌 주민들이 관광객들에 떠밀려 마을을 떠나고 있다. 4, 5년 전부터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생활 여건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거지가 관광지화해 소음, 쓰레기, 주차난으로 거주민들이 이주하는 현상을 일컫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이 북촌에서 실제 확인되면서 ‘정주(定住)형 관광지’라는 정체성이 훼손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종로구 주민등록인구 현황에 따르면 올 8월 현재 북촌(가회동, 삼청동) 인구는 총 7,537명으로 2012년(8,719명)에 비해 13.5% 감소했다. 세대 수로 봐도 해마다 약 100가구씩 줄어들었다.
북촌 한옥마을 입구에서 20년째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신모(72)씨는 “최근 4년 간 집값이 평당 400만원 정도 떨어졌다”며 “관광객 때문에 다들 못살겠다고 팔고 나가는 매물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개방적인 구조 탓에 외부인의 사생활 침해에 취약한 한옥을 중심으로 빈 집이 늘고 있다.
주민 A씨는 “쓰레기를 수거해가라고 내놓으면 관광객들이 그 봉투 위에 쓰레기를 다 올려 놓고 간다”며 “한옥은 유지 보수 비용이 많이 들고, 춥고, 주차 공간도 없어 기본적으로 생활하기 불편한데 관광객 피해까지 입어야 하니 굳이 여기 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실거주자들이 떠난 빈 한옥을 기업들이 매입해 영빈관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북촌에는 현재 약 1,200동의 한옥이 있다.
주민들은 직접적인 피해 외에도 동네가 관광지로 변하면서 여러 생활편의시설이 사라지고 있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거주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과일가게나 야채가게, 정육점, 세탁소가 없어지고 대신 그 자리를 카페나 음식점이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25년째 삼청동에 살고 있는 박모(48)씨는 “집 앞 5분거리 세탁소도 얼마 전에 국수집으로 변했다”며 “사정이 이런데 관공서에서는 주민이 아닌 관광객 위주의 대책만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최호진 북촌협의회 위원은 “북촌 내 인구가 계속 감소하다 보면 전시물만 있는 민속촌과 다를 바 없게 된다”며 “서울시의 ‘북촌가꾸기기본계획’이나 ‘중간평가’에서 핵심 가치로 언급되는 ‘주거마을’로의 정체성을 지키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1월 정주환경 개선과 골목상권 보호 대책을 골자로 하는 북촌 지구단위계획 재정비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서로 달라 난항을 겪고 있다. 이성호 시 한옥조성팀장은 “현재 민관 협의체를 구성해 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소상공인, 한옥 양옥 거주자, 임차인 등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의견을 모으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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