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ㆍ경직성ㆍ단기 성과주의 등
5대 교란 요인 동반 해체해야
혁신 친화적 경제 생태계 출현”
“한국 경제 생태계는 환경 변화에도 정부 주도 하의 박정희식 산업화 전략이 존속되고 기득권이 거대 담합 구조의 보호막에 숨은 탓에 혁신 성장의 길을 잃은 채 병리 현상과 정체 현상만 깊어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거대 담합 체계를 해체하지 못해 경제 생태계의 건강성을 복원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정부가 그 어떤 대책ㆍ처방을 내놓더라도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경고가 나왔다. 기득권, 폐쇄성, 경직성, 단기 성과주의, 현상유지 집착 등 현재 경제 생태계를 지배하고 있는 ‘5대 교란 요인’들을 제거하는 게 급선무라는 게 전문가들 주문이다.
동북아시아 전략 등을 연구하는 민간 싱크탱크인 니어재단(이사장 정덕구)은 22일 생태계 관점에서 한국 경제의 과제와 해법을 제시한 ‘한국 경제 생태계 보고서 초안’을 발간했다. 보고서는 정 이사장과 김정식 연세대 교수, 김동원 고려대 초빙교수, 김정관 박사, 김도훈 전 산업연구원장 등 13명의 전문가가 지난 3년 간 한국 경제를 생태론적 관점에서 연구해 온 결과물이다. 생태론적 접근은 경제 그 자체가 아닌 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각종 정치ㆍ사회 생태계에 대한 연구 등을 통해 경제적 해법을 구하는 방법론을 쓴다.
보고서는 우선 “한국 경제가 전통적 거시경제정책 모형이나 정부의 단편적 구조조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생태계적 침하 현상을 겪고 있다”고 규정했다. 장기간 가계ㆍ기업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도 경제 문제가 쉽사리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은 경제 환경의 왜곡이 워낙 심해 각각의 경제 주체가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높은 기득권 장벽 ▦단절과 폐쇄성 ▦경직성ㆍ비탄력성ㆍ비혁신성 ▦단기주의 ▦현상유지 증후군 등 다섯 가지를 한국 경제 생태계의 특성으로 파악했다.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기득권 세력, 특정 패거리에 의한 인사ㆍ정보ㆍ예산의 독점, 혁신을 꺼리는 경직적 문화, 대통령 5년 단임 임기에 맞춰 단기적 성과에만 집착하는 정책, 관료사회와 기업이 위험부담을 기피하면서 생기는 현상유지 선호 현상 등을 지목한 것이다. 특히 보고서는 “관료 사회는 그 동안 5년 단임정치에 순치돼 왔다”며 “관료들은 순종하되 추종하진 않는다는 새로운 처신 방식으로 정치의 파고를 넘어 왔다”고 꼬집었다.
연구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기득권 해체를 통한 부담ㆍ보상체계의 재편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정치와 경제 권력의 담합 구조, 기득권 보호 장치 등을 깨지 않고서는 경제 생태계가 건강해질 수 없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보고서 총론을 통해 “기득권의 양보는 새로운 진입을 용납하는데 그치지 않고 기득권 패거리의 해체를 동반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혁신 친화적 경제 생태계의 출현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시장과 정부의 역할분담 체계를 바꾸는 노력도 필요하다. 정 이사장은 “정부가 경제분야에서는 거의 손을 떼고 사회분야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역할은 생태계의 순환을 지원하는 일에 집중돼야 하는데, 그는 “이를 위해 금융시스템이나 사회안전망의 작동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 이사장은 또 “다음 위기는 생태계의 반란에서 올 것”이라며 “정치 경제 사회 각 부분의 생산성이 급감하고 국민 삶의 질이 떨어지며 정치가 이를 막으려다 재정 파탄을 일으키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니어재단은 보고서를 토대로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투자센터빌딩에서 ‘생태계 관점에서 본 한국 경제의 해법’을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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