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지은희/사진=KLPGA
20대 초반이 득세하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무대에서 환갑으로 통하는 30대의 반란이 일어났다. 주인공은 뚝심의 지은희(31ㆍ한화)다. 2009년 권위의 메이저 대회인 US 여자 오픈 우승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그가 오랜 공백을 딛고 무려 8년 만에 정상을 탈환하며 올 시즌 한국 여자 골프 전성기의 정점을 찍었다.
지은희는 22일(한국시간) 대만 타이베이의 미라마르 앤 컨트리클럽(파72ㆍ6,425야드)에서 열린 LPGA 투어 스윙잉 스커츠 타이완 챔피언십(총 상금 220만 달러ㆍ우승 상금 33만 달러)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7개를 낚는 무결점 활약으로 완벽한 우승을 굳혔다.
최종 합계 17언더파 271타가 된 지은희는 이날 버디 7개를 몰아치며 맹추격한 리디아 고(20ㆍ뉴질랜드ㆍ11언더파 277타)에게 허점을 주지 않고 그대로 와이어 투 와이어(1~4라운드 1위) 우승을 맛봤다. 첫날 악천후 속에서도 선두에 올랐던 지은희는 2라운드에서 공동 선두를 유지했고 3라운드 들어 2위권에 6타 앞선 단독 선두를 탈환한 뒤 마지막 날 무결점 샷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지은희의 우승은 2009년 US 여자 오픈 이후 8년 만이자 통산 3승째(2008년 웨그먼스 LPGA 첫 우승)다. 올 시즌 한국 선수 최다승(2015년 15승) 타이인 15승째를 손수 만들며 기쁨을 두 배로 늘렸다. 앞으로 LPGA 대회가 4개 더 남아있어 신기록 경신이 유력해졌다.
지은희하면 수상스키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아버지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경기도 가평군 남이섬 부근이 고향인 지은희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다섯 살 때 청평호에서 수상스키를 탈 만큼 겁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남다른 딸의 운동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는 12살 때 딸에게 처음 골프채를 쥐어주었다.
이후 아버지는 딸의 레슨을 위해 춘천과 서울을 오가는 왕복 4시간의 출퇴근을 마다하지 않았고 1999년에는 은행 대출을 받아 아예 가평에 골프연습장을 차린 일화는 유명하다. 또 청평댐에 띄운 부표를 표적 삼아 아이언 샷 훈련을 시켰던 ‘청평댐 부표 훈련’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스포츠 지도자 출신답게 체력과 심리의 중요성을 알고 체계적으로 훈련시킨 것 역시 아버지다.
전폭적인 뒷바라지 속에 지은희는 아마추어 시절 한국 여자 아마 선수권을 비롯해 주요 대회를 휩쓸었다. 2005년 프로에 데뷔한 그는 2007년 국내 투어에서 대상 포인트와 상금 2위에 오르며 신지애(29)ㆍ안선주(30)와 함께 국내 투어 빅3로 군림했다. 2008년 당당하게 입성한 LPGA에서는 해마다 1승씩 거두며 밝은 미래를 약속했다. 그러나 2010년 스윙 교정 이후 좀처럼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상금 랭킹은 2010년부터 꾸준히 30∼40위권을 오르내렸음에도 2012년 웨그먼스 챔피언십과 2015년 푸본 타이완 챔피언십 등에서 간발의 차로 준우승에 머문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3라운드까지 2위권에 6타나 앞섰음에도 “뒤에서 최선을 다해 쫓아올 것이기 때문에 스코어를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내 할 일을 하겠다”고 스스로 방심하지 않은 데에는 이런 속사정이 숨어있다.
LPGA 공식 홈페이지는 만 31세를 넘긴 지은희의 나이에 주목하며 “2승에서 3승까지 무려 8년이 걸렸다”고 놀라움을 표했다. 지은희는 “지금 이렇게 행복하고 흥분될 수가 없다”면서 “8년 동안 우승을 못했기 때문에 이 순간을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골프 치기 좋은 날이었고 리디아 고 등 좋은 선수들과 동반 라운딩을 해 긴장을 풀고 그들과 플레이를 즐기자는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세계 랭킹 1위 유소연(27ㆍ메디힐)은 7언더파 281타로 평샨샨(28ㆍ중국) 등과 공동 3위에 올랐다. 반면 LPGA 5관왕에 도전 중인 박성현(24ㆍKEB하나은행)은 공동 42위(5오버파 293타)로 부진해 대조를 이뤘다.
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한국스포츠경제 관련기사]
[스타와 행복](39)나성범 '김경문 감독님과 우승하면 더 행복할 것'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