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다연장로켓 천무가 세계 시장에서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전시회(ADEX) 개막식에서 ‘천무’를 콕 집어 치켜세웠다. 의외였다. 이날 문 대통령이 높이 평가하며 거론한 국산 무기는 고등훈련기 T-50과 천무가 전부였다. T-50이야 지난 10년간 23억 달러 이상 해외에 판매됐고,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의 화려한 공중곡예를 통해 워낙 널리 알려진 무기다. 반면 천무는 아직 일반인에게는 낯설다. 해외 시장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낸 것도 아니다. “왜 천무를 거론했을까?” 문 대통령의 축사를 들으며 군 안팎에서 불거진 의문이다.
어쨌든 분위기는 고무적이다. 지상무기의 스테디셀러로 통하던 K-9자주포와 K-2전차가 잇따라 곤욕을 치르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또 다른 지상장비인 천무의 이름을 불러줬으니, 이보다 더한 영광이 있을 듯싶다.
천무(天舞)는 ‘하늘을 뒤덮는다’는 뜻이다. 2011년 국민 공모로 이름을 정했다. 천무의 분산탄은 300개의 자탄을 쏟아내 축구장 3개 면적을 단숨에 초토화할 수 있다. 또 천무의 고폭탄은 반경 15m 안으로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 최대 사거리는 80㎞에 달해 K-9자주포의 2배다. 백령도와 연평도에 배치된 천무의 엄청난 화력은 북한의 서해 최전방을 무력화하는데 유용할 것으로 기대가 크다.
하지만 국내에는 천무의 괄목할만한 성능을 온전히 평가할 시험장이 없다. 경기도 포천에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지상무기 시험장이 있지만, 길이가 짧아 천무를 감당할 정도의 공간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사격장을 이용하고 있다. 애지중지하는 옥동자를 낳고서도 정작 남의 집에서 의탁해 키우는 꼴이다. 포천 시험장의 면적을 넓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주변 임야와 농토를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주민 반발과 예산 확보에 걸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천무 뿐만 아니다. 국산 요격미사일 철매-2의 경우에도 북한 탄두를 가정한 모의탄을 멀리서 쏴서 격추하는 시험을 해야 하는데, 포천 시험장이 좁다 보니 국내에서는 시도조차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국산 지상무기들이 첨단화하면서 덩치는 어른만큼 커지는데 여전히 아동복을 입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 큰 문제는 비용부담과 정보유출의 우려다. 천무를 배에 실어 해외로 나가 발사시험을 하고 다시 온전히 국내로 반입하는 과정이 모두 돈이다. 한번 이동할 때마다 족히 수억 원은 든다고 한다. 무기개발 과정에서 적지 않은 액수다. 문 대통령이 ADEX 개막식에서 천무를 거명한 바로 그날, 전시장을 찾은 국회 국방위원들은 이 같은 애로사항을 전해 듣고 “장거리 지상무기의 사격장 문제가 심각하다”며 “정부가 업체와 소통과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고 한다.
돈도 돈이지만, 천무의 성능이 고스란히 외국에 노출되는 것도 심각한 부분이다. 천무의 자랑인 자탄의 성능을 평가하려면 발사한 수백여 개 탄두의 궤적과 사거리, 폭발력 등 취합해 분석해야 하는 데이터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각종 장비를 남의 시험장에 설치해 무기개발의 핵심인 성능평가를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A매치 결전을 앞두고 상대편 감독 앞에서 연습경기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내의 지상무기 시험장이 열악한 탓이다.
문 대통령은 17일 축사에서 “정부도 노력할 테니 기업도 투명한 경영으로 거듭나달라”고 재차 촉구했다. 물론 방산비리의 오명은 조속히 털어내야 할 적폐일 수 있다. 하지만 천무의 사례를 보면 과연 방산업체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걸림돌이 투명성 부족인지 의문이다. 정부가 번지르르하게 말만 앞세우지 말고 먼저 행동에 나서야 한다. 판을 제대로 깔아야 윷을 던지든, 작두를 타든 할 것 아닌가.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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