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A국장 성차별 발언 없었던 것으로 판단”
행위 없는데 징계 결정… 조사 따로 결론 따로
문제 제기한 측의 주장만 반영, 형평성도 어긋나
급기야 외교부 여성직원 10여명 탄원 구명에 나서
지난달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여성은 열등하다’는 등 성차별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외교부 A국장의 징계 수위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조사 결과 성차별 발언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징계를 결정한 모순된 결정 때문이다. 조사 과정에서의 어이없는 허점들도 드러났다.
20일 외교부에 따르면, A국장이 성차별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난달 18일부터 최근까지 외교부 감사관실은 A국장과 해당 식사 자리에 있었던 3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A국장에 대해 경징계 의결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는 앞으로 두 달 안에 감봉이나 견책 등 구체적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문제는 징계 결정에 이르는 논리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20일 이번 조사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A국장 발언이) 문제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전반적인 맥락으로 보자면 여성 비하나 성차별적인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A국장의 발언이 성차별이라기 보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여성이 남성에 비해 능력을 드러내기 어려운 환경에 있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실제 당시 자리에 동석했던 기자 3명 중 2명은 성차별적 발언으로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최근 외교부 안에서 여성 직원들이 실력과 능력을 발휘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취지로 받아들였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결국 외교부는 성차별 발언이 아니라고 판단해 놓고도 징계를 요구한 셈이다.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음주운전을 했다’는 설명을 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당국자는 "전적으로 여성 비하적 발언이 아니라고 단정짓는 것은 아니다”고 말을 흐리더니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문제”라고 부연했다. 성차별은 아니지만 공무원으로서의 품위유지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앞으로 상대의 오해를 산 발언을 하는 등 품위가 떨어지는 공무원을 모두 징계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런 것은 아니다"고 말을 흐렸다. 슬금슬금 눈치만 볼 뿐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이다.
조사 자체도 원칙 없이 진행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교부 감사관실은 A국장을 제외한 나머지 3명 가운데, A국장이 성차별 발언을 했다고 주장한 기자에 대해선 2차례 면담을 실시했고, 면담에서 제기된 내용들을 대부분 징계 결정에 참고했다. 반면 성차별 발언이 없었다고 주장한 나머지 2명에 대해선 서면조사만 실시해 비위 조사의 기본 중의 기본인 형평의 원칙을 저버렸다는 지적을 샀다.
이상한 방향으로 이번 사안이 번지면서 논란이 커지자, 참다 못한 외교부 여직원들이 나섰다. A국장과 과거 함께 근무했던 10여명의 여성 직원들은 각자의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탄원서를 작성해 감사관실에 보내며 자발적으로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남성 공직자의 성희롱이나 성차별 발언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살벌한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들이 외교부의 이번 사건 처리과정을 얼마나 불합리하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 여성 직원은 이메일에서 A국장에 대해 "임신한 직원에게 충분한 휴식 등을 보장하는 등 겉치레가 아닌 진짜 배려를 해온 선배"라고 말했고, 또 다른 직원은 "여성 과장이 드물었던 시기에도 여성 과장을 발탁하는 등 능력으로 직원들을 평가해온 사람"이라며 “성차별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고 썼다. 심지어 일부 직원은 자신의 실명을 공개해도 좋으니 A국장이 후배 직원들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언론과 인터뷰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명운동에 나서고 있는 직원들은 외교부 본부뿐만 아니라 해외 공관과 청와대 등 근무지가 다양하다고 한다. 외교부 안팎으로 이번 사건 처리과정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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