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MB)ㆍ박근혜 정부 시절 각종 정치공작과 불법사찰 등을 벌인 혐의를 받는 추명호(54) 전 국가정보원 국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보수정권에서 친정부 성향 관제시위를 주도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도 구속을 면했다. 검찰은 핵심 피의자들의 잇단 영장 기각에 “수긍하기 어렵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는 20일 국정원법상 정치관여ㆍ직권남용 등 혐의로 추명호 전 국장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강 판사는 “전체 범죄사실에서 추 전 국장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피의자 주거 및 가족관계 등을 종합하면 구속할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사유를 밝혔다.
추 전 국장은 MB 정부에서 ‘박원순 제압문건’을 작성하고 야당 정치인들을 공격했으며,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인사들을 방송에서 하차시키거나 소속 기획사에 대해 세무조사를 하도록 공작한 혐의를 받는다. 박근혜 정부 때는 국익정보국장(8국)으로 재직하며 블랙리스트 실행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기각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검찰은 “추 전 국장은 국정원 의사결정에 깊숙이 관여한 최고위 관부로서, 문성근 합성사진 유포 등의 비난 공작, 야권 정치인 비판, 정부 비판 성향 연예인들의 방송 하차 내지 세무조사 요구 등을 기획하고, 박근혜 정부 문화체육계 블랙리스트 실행에도 관여하는 등 범행이 매우 중하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그럼에도 피의자의 지위와 역할, 기본적 증거가 수집됐고 수사기관에 출석해온 점 등에 비춰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법원 판단은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추 전 국장이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등 공무원ㆍ민간인을 사찰하고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비선보고 했다는 국정원 추가 수사의뢰에 대해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한 후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적극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이날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는 소명되나 피의자 신분과 지위, 수사진행 경과 등을 고려할 때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들었다.
추씨는 MB 정권과 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과 공모해 각종 정치적 사안에서 정부 입장을 대변하고 야당 인사의 명예를 훼손하는 관제집회와 1인 시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다. CJ그룹 본사 앞에서 정치풍자 프로그램 폐지를 촉구하는 규탄시위를 벌이다가, 중단 대가로 2,2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뜯어낸 혐의도 있다.
검찰은 영장 기각에 강하게 유감을 표했다. 검찰은 “피의사실 대부분을 부인하고 압수수색 때 사무실을 잠근 채 자료를 숨기고 주민등록지가 아닌 곳에 거주하는 등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가 현저한 피의자에 대해 영장을 기각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은 추씨가 국정원의 요청과 자금지원을 받아 김대중 전 대통령 묘지 훼손 활동 등 국정원 정치공작을 돕는 폭력시위를 반복하고, 대기업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등 각종 범죄를 저질렀다고 강조했다.
검찰 관계자는 “기각 사유를 검토해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하겠다. 진상규명을 위해 철저히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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