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ㆍ경제ㆍ사회 총체적 위기
대기업 과세 최고세율보다 높이고
노사, 저성과자 해고 기준 마련을”
“지금은 총체적 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 절실하다. 어떤 정부ㆍ정권이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와 정책의 60~70%만 이루고, 나머지는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관행을 세워야 한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의 ‘정책공간 국민성장’ 소장을 맡아 ‘제이노믹스’ 설계를 주도한 조윤제 주미대사가 신간 ‘생존의 경제학’에서 내 놓은 고언이다.
문 대통령의 경제고문 격인 그는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바다를 건너기 위하여’란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현재 대한민국이 정치ㆍ경제ㆍ사회 전반의 구조적 위기에 처해있다고 규정하고 이를 해결할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다. 그의 근본적이고 과감한 ‘충고’가 향후 정부 정책에 어떻게 반영될 지 주목된다.
조 대사는 이 책에서 우선 우리 사회가 ▦급격한 소득분배 악화와 역동성 상실(경제) ▦단기성과주의에 따른 국가 지배구조 약화(정치) ▦세대간 갈등(사회) 등에 외교적 위기까지 겹친 내우외환의 총체적 난국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이른바 ‘경제적 기반’과 ‘경제 외적 기반’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개혁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 필연적인 갈등을 최소화할 사회적 대타협이 필수라는 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이다. 집권세력이 정책의 30~40%는 야당에 양보해야 한다는 제안도 “과거와 다른 정치질서를 만들지 못하면 결코 개혁을 이뤄낼 수 없으며 현재의 정체와 교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란 절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조 대사는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로 ▦재벌ㆍ노동 개혁을 포함한 시장구조 개혁 ▦복지ㆍ조세ㆍ교육개혁 ▦국가지배구조와 관료시스템 개편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국민적 합의 등을 꼽았다. 가령 재벌개혁과 관련, 그는 “재벌 2,3세들이 지금처럼 극소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ㆍ세습하는 걸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게 사회 정의와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예기간을 거쳐 재벌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총수 지배 기업 숫자를 줄여 최종적으론 전문경영인에 의한 분야별 독립경영 체제를 확대할 적절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과 고소득자 과세 강화에 대해선 “한국에선 개인과 기업이 쉽게 거주지를 해외로 옮길 상황이 못 된다”며 “법인세도 가령 연간 순이익이 2,000억원, 1조가 넘을 경우 현행 최고세율(22%)보다 더 높은 한계세율로 과세하는 걸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소득분배 개선을 위해선 “우리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정임금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국가나 정부가 민간의 임금체계에 간섭하긴 어렵지만 지나친 격차 확대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에서 최고경영자 보수가 일반직원 평균의 10배(공기업은 5배)를 넘지 못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란 구체적 예도 들었다.
조 대사는 이어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대기업 정규직의 고용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사 합의로 기업의 저성과자 해고 기준을 마련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필요할 경우 정부가 노사정 협의 하에 직무분석과 임금체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달 말 부임할 예정인 조 대사는 “한계가 많은 책이지만 한국 경제, 사회,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토론을 자극하고 공감을 확대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용식 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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