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韓日에 무기 판매하고
김정은은 체제 결속 꾀하려…
둘의 셈법 맞아 긴박 장면 연출
김정은 혼자 테이블서 춤 추게…
제재와 함께 한 손은 내밀어야
평창올림픽 등이 활로될 것”
북한 핵ㆍ미사일이 초래한 한반도 안보 위기가 심각하다. 북한의 도발과 미국의 강력한 경고가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긴장의 수위는 높아가고 있다. 북한의 막무가내 식 도발에 우리 정부의 입지는 점차 위축되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공조 또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반도 안보의 당사자로서 우리는 어떻게 위기를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 통일ㆍ외교ㆍ안보 분야 국책연구기관장을 잇따라 만나 진단과 해법을 들어봤다.
손기웅(58) 통일연구원장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치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일축했다. 한마디로 전쟁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발언에 대해서도 “장사꾼 기질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뒷감당을 하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손 원장은 19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트럼프가 한반도를 달리는 폭주 기관차는 맞지만 서로 철로가 달라 부딪칠 일은 없다”며 “두 사람이 각자 추구하는 국익에 긴장 조성이 바람직하다고 봤고 셈법이 맞았기 때문에 긴박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 원장은 “김정은 혼자 테이블에서 춤추게 해야 한다”며 북핵 대응책으로 조용하고 지속적인 제재를 주문했다. “이미 북한에서 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시작했는데 도리어 트럼프발 긴장이 정치 사상적 결속을 도와주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_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일으킬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장사꾼이다. 그러면 왜 거친 언사로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까. 일단 국내 정치용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과 차별화하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 무기를 판매하기에도 위기 상황이 좋다. 진보 성향 한국 정부의 대중 접근을 단속하고 한미일 군사 협력 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등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주도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_왜 김정은은 미국과 지독하게 맞서나.
“트럼프의 거침없는 언사를 보면서 국제사회가 미국도 선제 공격을 할 수도 있겠다고 여기게 됐다. 김정은에게 유리하다. 먼저 그 동안 전혀 명분을 얻지 못했던 김씨 일가의 핵 보유가 정당해진다. 긴장도가 높아질수록 북한의 결속력은 더 강해지고 체제도 안정된다. 전쟁을 불사할 것처럼 꾸며 중국ㆍ러시아 등 국제사회의 중재를 유도할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북미 대화 통로가 확보되는 것이다.”
_북미 갈등 속에서 한국 정부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견결히 지켜야 한다. 우리가 직ㆍ간접적 핵 보유국이 되면 어떻게 중ㆍ러 등에 북핵 폐기를 위한 제재에 동참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겠나. 아울러 김정은이 잡든 안 잡든 우리는 항상 손을 내밀고 있어야 한다. 제재 국면이 계속되면 김 위원장이 전략적으로든 실제 필요해서든 난국 돌파를 위해 손을 잡을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이든 이산가족 상봉이든 활로가 뚫릴 수도 있다. 한 손은 국제사회와 잡고 북한을 제재ㆍ압박하면서 나머지 한 손은 북핵의 평화적 해결과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에 내밀어야 한다.”
_북한이 호응해 올 가능성이 있나.
“그래서 억제ㆍ협력 양면 전략이 필요하다. 제재는 유용하다. 수소폭탄 실험에 환호했지만 삶은 더 고통스러워진다는 걸 북한 주민이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가 다가가 핵무기 없이도 평화적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할 수 있다. 현 정부는 접촉과 교류ㆍ협력의 폭을 넓혀야 한다. 다만 현물 거래를 제안해야 한다. 제재 때문에 예전처럼 개성공단처럼 큰돈이 오가는 거래가 불가능하다. 북한에 귀책 사유가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_새 정부는 통일보다 평화를 강조한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가 ‘두 개의 한국’을 전제한 분단 관리 차원 평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통일을 가슴에 품은 평화라고 이해한다. 평화를 앞세우는 건 전략적 선택이다. 통일을 강조하면 북한이 대화에 나오기 어렵다.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의한 통일이어서다. 국제사회를 설득하기에도 평화가 낫다. 한반도 통일이 우리에겐 평화 회복이지만 주변국 입장은 다르다. 평화 파괴일 수 있다. 핵 없는 평화 속에서 자유ㆍ민주ㆍ복지ㆍ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한반도와 동북아 전역에 실현하고 싶다고 호소해야 국제사회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
_미국이 남북 대화를 못마땅해하는 것 같다.
“미국은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한미 관계가 긴밀해져야 하는 것은 오히려 그래서다. 통일 이후 우리가 중국보다 미국과 여전히 가깝게 지내리라는 확신을 미국에 줘야 미국의 ‘두 개의 한국’ 정책이 바뀌고, 군사 공세를 누그러뜨리라는 우리 요구도 관철될 수 있다. 결속 고리는 자유와 민주라는 보편적 가치다. 그런 가치 동맹이 한미 관계의 미래상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손기웅 원장은
1992년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94년 통일연구원에 조인한 뒤 올 3월 원장으로 발탁됐다. 한국DMZ학회 초대 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발탁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새 원장을 뽑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손 원장은 “원칙을 지켜왔다”며 “통일을 위한 대북 정책에는 좌우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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