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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원해서 하는 것 맞아요? 확실해요?

입력
2017.10.19 20: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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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세 살 여자아이가 매일같이 하이힐을 신고 유치원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다섯 살 여자아이가 자신이 ‘섹시’하냐고 묻는 것, 또는 일곱 살 아이가 에버크롬비의 패드를 덧댄 비키니 상의를 사달라고 조르는 것은 누가 보아도 바람직하지 않은 광경으로 비칠지 모른다. 하지만 열여섯 살 소녀가 비키니 상의와 짧고 딱 달라붙는 청 반바지를 입고 남자친구의 차를 세차하고 있다면 어떤가? 대학 신입생들이 듣는 스트립 댄스 기반의 에어로빅 수업은?”

지난주 출간된 페기 오렌스타인의 책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을 읽은 뒤 책상에 머리를 박고 생각했다. ‘비혼이라 행복해요.’ 그러나 사회 구성원의 거죽을 쓴 이상 눈치 없이 행복을 발산해선 안될 일이다.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물었다. “딸이 섹시한 옷을 사달라고 하면 뭐라고 할 거예요?” 정말 궁금하기도 했다. 아이 키우는 부모 중 이 난제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자, 과연 누구인가.

“전 답을 알고 있어요” 미취학 여아를 딸로 둔 한 취재원은 의외로 단숨에 말했다. 이제 곧 거울 앞에서 자신의 신체 변화를 지켜보게 될 딸에게 그가 준비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네가 원하는 건 네가 원하는 게 아니야”.

오렌스타인의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책은 최근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 횡행하는 오럴 섹스를 보고하는 데 한 장을 할애했다. 미국의 성생활에서 오럴 섹스는 한국에 비해 훨씬 일상적이지만, 그 연령이 점점 낮아지는 것과, 과거와는 사뭇 다른 의미를 띤다는 것만은 확실히 뉴스거리였다. 그가 만난 15~20세의 여학생들은 오럴 섹스를 ‘실제’ 성관계에 비해 “대수롭지 않은 행위”로 간주했다. 그것은 모순적이게도 금욕적인 성문화를 수호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1980년대 초반에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의무화된 금욕 성교육 프로그램은 성관계를 하면 순결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에이즈의 위협을 명분 삼아 성관계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주입시켰다. 이에 따라 청소년들이 찾아낸 부분적인 해결책이 오럴 섹스였다.”

해결책, 무엇을 해결한다는 걸까. 여학생들의 말을 종합한 결과 그가 낸 결론은 여학생들이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오럴 섹스를 한다는 것이었다. 올해 56세로, 십대 딸을 둔 기성세대인 저자는 머리에 지진이 나는 소리를 애써 감추며 다음 질문을 이어간다. “‘관계를 개선한다’란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이후의 이야기는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 자신의 감정이 상대의 감정보다 커질까 봐 경계하는 것, 짜증스러운 표정과 차가운 돌아섬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 다만 그 수단이 오럴 섹스라는 점이 학부모들을 폭발시키는 것이다. 딸의 입가를 상상하기조차 싫어하는 부모들과 달리 저자는 저널리스트이자 강연자로서 여학생들에게 묻는다. “너도 좋았니?” 17세 소녀의 대답은 “토 나온다”는 것이었다.

사회적으로 선망 받는 위치에 서고자 한다는 점에서, 미국 여학생들의 행동은 뚱뚱한 사람이 살을 빼는 것이나 회식자리에서 미소로 일관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선망은 적극적인 말이고 사실 그보다 많은 이들이 적어도 바보 취급을 당하지 않기 위해 원치 않는 일들을 한다. 오럴 섹스란 말에 기성세대들이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젓는 게 비겁한 일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세상의 미소를 받으려는 인간의 끈질긴 노력은 요람에서 실버타운까지 계속되며, 그렇다면 부모가 할 일은 경악하며 딸의 등짝을 때리는 게 아니라 선망의 기준을 바꾸는 일일 것이다. 오렌스타인은 말한다. “핫함이 여성의 영향력과 권력,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면, 여성들이 핫해지려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등짝을 때리는 부모는 머지 않아 아이로부터 의심의 눈길을 받을지도 모른다. “지금 엄마가 원하는 건 엄마가 원하는 거 맞아요? 확실해요?”

황수현 문화부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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