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최지윤] 배우 이병헌의 연기력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은 없다. 여전히 충무로에서 흥행보증수표로 통하고 있다. 이달 초 개봉한 영화 ‘남한산성’에서 광해와 다른 카리스마를 드러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이후 5년 만에 정통 사극으로 돌아 온 이병헌의 연기력은 변함이 없었다. 예조판서 김상헌 역의 김윤석과 펼치는 팽팽한 의견 대립 신이 압권이었다. 선배 김윤석과 연기 대결로 비춰지는 점에 대해 부담감이 크지 않았을까.
“걱정하지는 않았다. 좋은 배우들과 함께 연기 해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김윤석 선배를 비롯해 박해일, 고수, 박희순, 조우진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 뿌듯했다. 관객수는 몰라도 진짜 좋은 영화가 나오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조우진을 제외하고 다들 처음 호흡을 맞춰서 어떤 케미가 있을까 궁금했다. (김윤석 선배와) 부딪히는 신이 많아서 긴장되면서 설다. ‘부대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확실한 건 선배는 나와 결이 다른 배우다. 결과적으로 더 좋았다.”
영화는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청의 대군에 둘러싸인 남한산성의 47일을 그렸다. 김훈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박해일이 연기한 인조는 광해를 이어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먼저 왕 연기를 해본 입장에서 박해일의 연기가 어떻게 보였을지 궁금했다.
이병헌은 “내가 왕 전문 배우도 아니고…”라며 너털웃음을 보였다. “왕 연기는 ‘광해’로 처음 했고, 사극은 이번이 세 번째라서 전문가라고 할 수 없다”면서도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인조 캐릭터가 가장 연기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해일이도 굉장히 긴장하고 생각이 많아 보였다”고 귀띔했다.
인조는 최명길, 김상헌처럼 소신이 뚜렷한 캐릭터가 아니다. 우유부단해 대신들의 의견에 이리 저리 흔들렸다. “이러한 모습을 러닝 타임 139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야 하지 않았냐. 장면마다 미세한 변화를 줘야 하니 고민이 많았을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면서도 “해일이가 연기해서 안심했다. 평소 굉장히 좋아하고 믿는 배우였다. 인조와 광해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지만, ‘어떻게 연기할까?’ 궁금했다. 선을 적절하게 잘 타더라. 고민한 흔적이 많이 보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병헌이 연기한 최명길은 청과의 화친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반면 김상헌(김윤석)은 청의 공격에도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최명길보다 김상헌 캐릭터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병헌 역시 주변에서 ‘왜 김상헌이 아닌 최명길 역을 맡았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시나리오를 읽고 어떤 역할이 제안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균형이 50대 50 대등했다. 김성환 역 제안이 왔어도 흔쾌히 했을 거다. 영화 찍으면서 가족들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왜 김성환을 안 했냐?’고 해 놀랐다. 제작사 관계자들도 ‘최명길 선택해서 정말 고맙다’고 하더라. 김상환을 할 걸 그랬나(웃음).”
김윤석과 연기하면서 기에 눌린 적은 없었을까. 박해일은 이병헌과 김윤석의 연기를 보며 “불에 델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이병헌은 김윤석의 발성에 놀랐다며 “김상헌 캐릭터 성격 때문인지 몰라도 선배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작게 얘기해도 대사가 명확하게 들렸다. 나 같은 경우 너무 감정에 몰입하면서 연기하다 보면 간혹 ‘대사 조금 크게 해달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선배의 성량이 부러웠다”고 했다.
이병헌은 황동혁 감독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드러냈다. 처음 황 감독과 만났을 떼 ‘친해질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첫 인상이 좋지 않았다며 “재미있는 얘기는 요만큼도 안 할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함께 작업해보니 이렇게 매력적인 사람이 없단다. 전 작품에서 호흡 맞춘 스텝들의 촬영장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감독님이 배우보다 인기가 많다. 촬영하면서 감독님 덕분에 커피차를 얼마나 받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제작비가 150억원 정도 들었는데, 감독 스스로 고민이 많았을 테고 주변에서 푸쉬도 있었을 거다. 흔들릴 법도 한데 돌쇠처럼 굳건히 자기 색깔을 담아서 놀랐다. 무서울 정도로 명확하게 자기 것이 있는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물론 황 감독에 서운했던 적도 있었다.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황 감독의 노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12월 중순부터 1월 말 무렵 남한산성 꼭대기가 얼마나 춥겠냐. 첫 신이었는데 말에 앉아 있을 때 입김이 많이 안 나왔다는 이유로 다시 찍었다. 실내 촬영 때도 입김 나오게 문 다 열어 넣고 찍었다. 입김 많이 나온 신이랑 연기 잘나온 신을 고민하더라(웃음).”
‘남한산성’은 누적관객수 40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고 담백하게 잘 그렸다는 평과 역사스페셜처럼 지루하다는 평이 엇갈리고 있다. 이병헌은 ‘남한산성’의 차별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부터도 마찬가지다. 한국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 대부분이 세고 자극적인 걸 좋아하지 않냐. ‘좀 더 센 영화 없을까?’ 계속 찾게 된다. 이전의 센 영화가 평범하고 흔해 보일 정도다. (‘남한산성’은) 조금 담백하고 심심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차별화 돼서 좋았다. 감독의 소신이 명확했고 명길, 상헌처럼 자기 것이 분명히 담겼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최지윤 기자 plain@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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