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치료 포기하고 죽으러 가는 곳’ 편견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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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병동=치료 포기하고 죽으러 가는 곳’ 편견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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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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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병동서 통증 완화 치료

원래 주치의 진료 그대로 받으며

호스피스팀 매일 환자 찾아 평가

원래 의료진에 진료방향 등 조언

부담 적어 암환자 상담료 4800원

*의사들 이해도 부족 등 한계도

암 이외 질환은 아직도 호응 부족

호스피스 병동에서만 제공되는

미술ㆍ음악 치료 받는 것도 제한

17일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종교인 등으로 구성된 호스피스팀이 신장암 환자 김선화(가명)씨를 돌보고 있다. 배우한 기자

“나를 이해해 주는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외롭지 않게, 가족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떠날 수 있어서요.”

17일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말기 신장암 환자 김선화(가명ㆍ57)씨는 일반 병동을 떠나 호스피스로 온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김씨는 지난해 6월부터 갑자기 마른 기침이 심해져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신장암 진단을 받았다. 이후 신장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지만 암이 재발해 척추 등 온 몸으로 퍼졌다. 최근까지 방사선 치료와 척추 수술을 받기도 했지만 더 이상 항암 치료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 의료진과 김씨의 공통된 견해다. 의료진이 보는 김씨의 기대 여명, 즉 앞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은 2개월 남짓. 절망스러운 상황일 수 있지만 김씨는 차분했고 또 평온해 보였다.

그가 이처럼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수월하게 받아들인 데는 ‘자문형 호스피스’도 한 몫 했다. 일반 병동에 머물다가 이날부터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 온 김씨는 전날까지 사흘간 일반 진료와 함께 자문형 호스피스 서비스를 병행해 받았다. 그러면서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거부감을 줄일 수 있었다.

최근 도입된 자문형 호스피스가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호스피스 병동은 죽으러 가는 곳’ ‘호스피스에 가면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편견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호스피스/2017-10-18(한국일보)

18일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지난 8월 시작된 자문형 호스피스 건강보험 적용시범 사업에 전국 상급종합병원 10곳과 종합병원 10곳 등 총 20곳이 참여하고 있다.

자문형 호스피스는 호스피스 환자만 모인 별도 병동이 아닌, 일반 병동에서 말기 질환을 담당하는 원래 주치의의 진료를 그대로 받으면서 추가로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받는 서비스이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로 구성된 호스피스팀이 매일 환자를 찾아 평가를 한다. 환자가 신체적 고통을 겪는지(신체적 평가), 병원비 문제나 가족 관계 때문에 고통을 받는지(심리ㆍ사회적 평가), 종교적 욕구는 충족됐는지(영적 평가) 등을 전인(全人)적으로 살핀다. 이들은 말기 질환을 담당하는 원래 의료진과 주기적으로 만나 진료 방향을 논의하며 적극적인 통증 완화 방안 등을 조언한다. 가족들과의 외출, 생일 파티 등 환자의 작은 소망을 이뤄주기도 하며 환자 가족이 준비된 이별을 맞을 수 있게 조언도 해준다.

비용 부담도 크지 않다. 자문형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는 환자는 원래 진료비에 더해 주 1회 돌봄 상담료(초회 9만5,810원, 2회부터 6만4,510원ㆍ병원급 이상 기준) 등에서 본인 부담 분만 내면 된다. 본인 부담 비율은 암 5%, 에이즈 10%, 만성폐쇄성폐질환ㆍ간경화 20% 등이다. 즉 암환자는 초회 돌봄 상담료로 4,800원 정도만 내면 된다는 얘기다. 장윤정 국립암센터 호스피스완화의료사업과장은 “호스피스팀이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연명 치료를 줄이도록 의료진에 조언해줄 수 있어 전체 진료비는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문형 호스피스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호스피스 전담 병동에 입원하는 ‘입원형’과 가정에서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는 ‘가정형’ 호스피스 두 가지만 있었다. 라정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팀장은 “호스피스 병동에 오기로 스스로 결심한 분들도 첫 날에는 의료진에게 인사도 하지 않을 정도로 낙담을 한다”면서 “누구든 초반에는 거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자문형 서비스를 받으면 일반 병동에서 기존 치료는 그대로 받기 때문에 환자의 거부감이 상당히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김씨 사례처럼 자문형이 입원형 호스피스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백혈병 같은 혈액암이나 에이즈, 간경화 등처럼 의료진이 말기 판정을 내리기가 애매한 경우나 환자 상태가 급변해 함부로 병동을 옮기기 어려울 때도 활용된다. 2015년 11월 백혈병 진단을 받고 올 8월 말기 판정을 받은 54세 남성 A씨는 면역력 악화로 폐렴이 와 호흡 곤란 증상 등을 보였다. 그럼에도 수혈과 같은 치료 겸 증상 완화 조치는 계속 필요했기에 기존 의료진은 A씨를 호스피스 병동으로 보내는 대신 자문형 호스피스를 의뢰했다. A씨는 지난달 19일 사망하기 전까지 일반 병동에서 적극적인 통증 완화 치료와 같은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았고, A씨 가족 역시 영정 사진 촬영과 장례식 준비 절차 등을 안내 받으며 좀 더 준비된 이별을 맞을 수 있었다.

물론 한계도 있다. 호스피스팀이 진료 관련 의사 결정을 내리는 입원형 호스피스와 달리, 자문형 호스피스는 일반 의료진이 최종 의사 결정을 한다. 따라서 적극적인 통증 완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호스피스팀의 의견이 온전히 반영되지 못할 수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만 제공되는 미술ㆍ음악 치료와 같은 각종 서비스를 받는 것도 제한된다. 정부가 지난 8월부터 가정형과 자문형에 한해 호스피스 대상 질환을 기존의 암에서 에이즈, 만성폐쇄성폐질환, 만성간경화 등까지 넓혔지만 암을 제외한 나머지 질환은 아직까지 호응이 크지 않은 것도 개선 과제다. 김대균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보험이사(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센터장)는 “비(非)암성 질환을 담당하는 의사들은 자문형 호스피스가 뭔지도 잘 모르고 환자에게 말기 통보를 해본 경험도 부족한 상태”라며 “이들 의료진의 호스피스 이해도를 높여야 제도가 정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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