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서편제’ 주인공 송화 役 이자람
“창이랑 뮤지컬은 발성 달라서
무대 오르기 전 요가로 몸 풀죠”
“꼭 놓지 말아야 하는 건 ‘노는 거’예요. 제 안에서 노는 욕망이 사라지면 예술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 같아요.”
신명 나게 놀고 싶어서 무대에 선다. 판소리를 하다가 어느 날 뒤따르는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워지면 록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로 달려가 노래한다. “미친 듯이 놀다가” 밴드 음악도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이 들면 대본을 쓴다. 그렇게 판소리를 하고 대본을 작성하고, 작창(作唱)에 음악감독도 맡는다. 소리꾼이자 공연예술가인 이자람(38)에게 이 모든 일은 “위로로 작용한다.” 지금은 뮤지컬 ‘서편제’에서 주인공 송화 역을 맡아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를 17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났다.
이청준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서편제’는 예술가로서 자신이 선택한 길을 따르는 세 인물 송화, 동호, 유봉의 이야기다. 2010년 초연 때부터 뮤지컬 배우 차지연과 함께 송화를 맡아 온 이자람은 어느덧 송화로 네 번째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가 자신의 전문 영역이 아닌 “남의 동네” 뮤지컬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판소리가 ‘서편제’의 주요 소재라서만은 아니다. 그는 스스로 소리꾼 역시 배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직접 대본을 쓰고 작창한 창작 판소리 ‘사천가’나 ‘억척가’에서도 무대 위에서 2시간 동안 여러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나 다름없다는 이유에서다.
어려운 점이 있다면 자신에게 익숙한 판소리가 아닌 뮤지컬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점이다. “판소리는 흉성(흉곽을 강하게 진동시켜 내는 소리)을 많이 쓰는데 뮤지컬은 두성(성대를 떨게 해서 내는 소리)을 많이 쓰거든요. 그래서 무대 오르기 전에 30분간 요가를 해서 몸을 풀고, 판소리할 때와는 다르게 두성을 써서 목도 풀어요.” 가장 긴장되는 노래도 ‘심청가’가 아니라 뮤지컬 넘버인 ‘살다 보면’이다.
“판소리는 恨만 담는 예술 아니에요
눈 먼 송화에게도 유머가 있어”
송화는 자신만의 소리를 찾기 위해 친동생 같은 동호를 떠나보내고, 아버지 유봉에 의해 시력을 잃지만 그 시련을 견뎌 낸다. ‘서편제’가 한의 정서를 대변하는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중요무형문화재제5호인 판소리 ‘춘향가’와 ‘적벽가’ 이수자이기도 한 이자람에게 판소리가 가진 의미는 남다르다. 그는 판소리를 한의 정서로만 이해하는 것을 반대한다. “제가 생각하는 송화에게는 유머랄까요, ‘쾌’가 있어요. 판소리도 한만 담는 예술이 아니라 인생을 다 담는 예술이죠. 제가 생각한 송화는 눈이 멀지 않았어도 ‘심청가’의 소리를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결국은 송화가 소리와 자신을 일치시키는 과정으로 작품을 해석해 접근했어요.”
판소리가 잊히고 있는 21세기, 이자람은 오히려 대중이 판소리에 가볍게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득음’이란 단어도 지금은 서로를 누르는 칼같이 쓰이기도 해요. 모든 소리는 개인 차가 있잖아요. 저는 송화와 같은 방식으로 소리를 찾고 싶지는 않아요.”
이자람은 올해 국립창극단 ‘흥보씨’에서 작창과 작곡을 맡았고 내년에는 새 작품에서 연출까지 맡는다. 미국 극작가 손톤 와일더의 희곡 ‘아워타운’을 판소리로 바꾸는 작업도 하고 있다. 수많은 수식어가 그를 따라붙지만 스스로 가장 원하는 단어는 ‘창작자’다. “저는 무대에 서는 재능이 잘 발달된 사람인 것 같아요. 이 중에 무엇이 내가 가장 행복한가 하는 답을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앞으로도 무언가를 계속 창조해 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서편제’는 11월 5일까지 서울 신사동 광림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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