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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함부로 역사에 매달리지 말라

입력
2017.10.18 14:4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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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학교 총학생회가 ‘충남대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충남대 민주광장 안에 ‘국립대 1호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기로 했다는 소식이 여러 매체에 보도되었다. 어느 진보 정론지는 이렇게 썼다. “지난 겨울 ‘촛불 혁명’이 젊은이들 마음에 남긴 씨앗이었을까. 취업 등 당장 눈앞의 일에만 허둥대며 지내던 충남대생들의 마음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가 닿았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해마다 돌아오듯이 하멜른의 피리 부는 마술사도 사망할 줄 모른다.

대학생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겠다면서 교정에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는 일에 발 벗고 나선다거나 사회문제를 고민하겠다면서 역사의식을 함양하겠다는 것은 그들이 직면한 현실을 은폐한다는 점에서 퇴행이라고 해야 한다. 물론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는 과정이 외면했던 사회문제에 눈뜨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잃어버렸던 연대의 가치를 새삼 발견하게 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당면한 현실을 잠시 망각하게 해줄 뿐이라는 점에서 그 열정은 골절상을 입은 환자의 피부에 덧바르는 후시딘(동화약품)이거나 마데카솔(동국제약)처럼 무용하다. 지금은 3ㆍ1운동을 하던 기미년이 아니다.

12ㆍ28 한일위안부 합의에 가장 분노한 연령층은 고등학생과 대학생이며, 이들이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알리기 위해 국내와 해외에서 벌이는 활동은 다종다양하다. 하지만 청소년ㆍ대학생들이 일제의 죄상에 몰두하면 할수록 그들의 현실은 더욱 꽉 막힌 석실 속에 갇힌다. 고등학생에게 필요한 당사자 운동은 야자(야간자율학습), 학내 인권, 18세 선거권과 관련된 것일 수 있다. 또 대학생이 목소리를 높여야 할 당장의 사회문제는 반값 등록금, 공공연한 음서제(蔭敍制), 청년 주거 안정, 청년소득 등이다. 이런 문제들을 보류한다는 점에서 정부와 기성세대는 위안부 문제에 몰입하는 청년들에게 크게 안도한다.

다카하라 모토아키의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삼인, 2007)는 한국ㆍ중국ㆍ일본이 서로 물고 물리는 혐한ㆍ혐중ㆍ반일 사태를 분석한다. 한ㆍ중ㆍ일 3국은 개발주의형 경제발전을 통한 고도성장과 중간층 확대라는 국가 전략을 구사해온 공통점이 있다. 3국 모두 대학을 나오면 전원 취직이 가능한 시절이 있었다. 이처럼 경제가 활황이었을 때는 서로의 역사문제가 무마되었지만, 세계화와 더불어 고도성장의 길이 막히면서 3국의 역사(과거사) 문제가 과잉 이데올로기화되기 시작했다. 이때 불황의 가장 큰 피해자인 청년들은 자신의 좌절과 불안이 국내에서 유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대신, 외부에서 적을 찾는다.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녀상 건립 열풍은 출구 없는 현실을 나타내주는 이 시대의 증상이다.

조선인 위안부 문제와 난징학살 등 한국이나 중국이 일본으로부터 받아내야 할 사죄와 보상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점은 3국이 얽혀 있는 혐한ㆍ혐중ㆍ반일의 발화점이 역사문제이기보다 각 나라의 청년 실업과 양극화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을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로 향하게 하는 것은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가 아니다. 실업과 양극화 해결에 무능한 정부는 청년들이 암울한 국내 문제로부터 역사로 눈을 돌리기를 바라며, 문제의 해결책을 갖고 있지 못한 3국 정부로서는 혐한ㆍ혐중ㆍ반일에 열성인 청년들이 어여쁠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의 박수에 속지 말라. 과녁은 그들이 박수를 치지 않는 곳에 있다. 기성세대와 반목하지 않는 청년운동은 협잡이다.

토템(totem)은 숭고하고 위력이 있다. 전국의 거의 모든 초등학교 교정에 반공 소년 이승복의 동상이 건재했을 때, 북한은 감히 3대 세습이나 핵무기를 개발할 꿈도 꾸지 못했다. 그 많던 이승복 동상이 사라지고 나자 북한은 대한민국의 토템에 짓눌려 엄두도 내지 못했던 3대 세습과 핵무기 개발을 보란 듯이 해치우고 말았다. 현재 한국은 노벨평화상 하나를 겨우 건진 데 반해, 일본은 2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바로 이런 사정이 전국의 대학교 교정마다 새로운 토템을 세워야 할 강력한 이유가 된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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