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학의 호화생활… 깜깜이 기부문화 불신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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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학의 호화생활… 깜깜이 기부문화 불신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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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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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병 딸 10여년 기부 받고도

금액ㆍ사용내역 전혀 공개 안해

SNS 통한 개인기부 쉬워졌지만

당초 목적과 다른 사용 비일비재

한해 1000만원 이상 등록 의무

소액 후원 관리는 사실상 방치

딸 친구를 살해, 유기한 이영학이 11일 오전 현장검증을 위해 서울 중랑구 망우동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자신과 딸의 희귀병(거대백악종) 치료를 핑계로 후원금을 모집해온 이영학(35ㆍ구속)이 외제차를 몰고 혈통견을 분양 받는 등 호화생활을 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깜깜이’ 기부금 모집이 도마에 올랐다. 기부 자체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제도상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출판물, 온라인 커뮤니티, 언론 보도를 통해 희귀병 투병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리며 기부금을 걷어 들인 이씨는 10년 넘도록 기부금 규모 및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않았음에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서울 중랑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전담 팀을 꾸려 이 부분을 집중 수사하고 있다. ‘여중생 살인’이라는 흉악범죄를 계기로 이영학 기부금 유용 의혹이 불거지지 않았다면 문제의 기부금 모집은 얼마든지 이어졌을 것이란 얘기다.

이씨처럼 개인이 후원금을 모집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 증가로 후원을 이끌어낼 만한 사연을 알리기 용이해진데다, 파급도 커져 많은 이들이 지인 수술비 지원, 유기동물 보호 등을 내세워 개인 계좌로 기부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개인 모집자가 기부금을 당초 공개한 목적과 달리 사용해 불거지는 문제도 비일비재하다. 지난 8월 직장인 배모(31)씨가 “버려진 고양이 장염과 당뇨 치료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말만 믿고 SNS에서 알게 된 A씨에게 후원금을 입금했으나, 진료 내역 및 지출 증빙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서울 수서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한 사건이 단적인 예다.

기부금품의모집및사용에관한법률은 ‘연간 누계 1,000만원 이상 기부금(품)을 모집하려면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등에 모집 목적, 목표액, 사용계획 및 모집자 정보를 등록해야 한다’(제4조)고 명시하고 있다. 등록 의무화 기준을 ‘행위’가 아닌 ‘금액’에 맞춘 것이다. 제도상 소액 기부금 모집은 사실상 관리가 전무한 셈이다. 제도가 아닌 양심에 기대다 보니 불투명한 기부가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기부 총액이 연 1,000만원을 넘긴 상황에서 등록을 하지 않더라도 적발이 바로 되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인력 문제 등 현실적 여건을 고려할 때 미등록 모집인을 일일이 살펴볼 수 없어 언론 보도나 제보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미등록 상태에서는 ‘기부금(품) 모집 상황과 사용명세를 공개하고 회계감사를 받을 의무’(제14조)를 따를 이유가 없기 때문에 역시 공개 여부는 모집자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

개인이 아닌 단체에 대한 신뢰도 그리 두텁지 않다. 새희망씨앗이 결손아동을 돕는다며 2014년부터 모집한 128억원을 빼돌리는 등 기부단체 관련 기부금 유용 및 횡령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 월드비전 관계자는 “새희망씨앗 사건 당시 기부 중단 문의가 빗발친 건 물론, 기부 자체에 대해 회의감을 표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전했다. 회계 서류에 대한 일반 기부자의 접근성과 이해도가 낮은 것 역시 기부금 모집 신뢰도 하락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 2,038명을 조사한 결과, ‘최근 1년간 기부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52.7%) 중 61.7%가 ‘사용처를 모른다’고 했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올바른 기부문화 확립 및 신뢰도 향상을 위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희정 한국NPO공동회의 사무처장은 “안전한 기부를 위해선 정부 및 지자체에 등록 여부를 비롯, 내외부 감사를 받는 단체인지 확인하는 게 좋다”며 “기부금 모집 단체(또는 개인) 정보가 담긴 인증번호를 정부가 기부자에게 제공해 기부금 모집 자체 신뢰도를 높이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볼 만 하다”고 조언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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