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전 오늘(1867년 10월 18일) 알래스카가 미국 영토에 편입됐다. 지금은 국립공원이 들어선 알래스카 주 태평양 연안 마을 시트카(Sitka) 만 러시아 군 기지에서 열병식과 함께 영토 할양식이 열렸고, 깃대에 미국 국기가 올랐다.
러시아 제국이 영국 프랑스 오스만제국 연합국과 벌인 크림전쟁(1853~56년)의 여파로 알렉산드르 2세의 러시아가 심각한 재정난을 겪던 때였다. 영국령 캐나다와 국경을 맞댄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면 재정난도 덜고 덤으로 영국도 견제할 수 있다는 게 러시아의 계산이었다. 미국은 50년 전 영국과 독립전쟁(1775~1783)을 치른 나라였다. 당시의 알래스카는 남한 면적의 15배에 달하는 방대한 땅이긴 해도 모피ㆍ가죽을 빼면 경제적 가치도 없던 눈 덮인 불모지였다. 미국이 알래스카에 눈독을 들인 이유도, 러시아를 경유한 유럽 전신망 선점 욕심 외에, 영국을 견제하려는 지정학적 야심이 없지 않았다.
앤드루 존슨 미국 대통령과 알렉산드르 2세의 지시 하에 시워드 당시 미 국무장관과 에두아르트 스테클 주미 러시아 공사가 1867년 3월 30일 미화 720만 달러(현재 기준 약 16억~18억 달러)에 매매 협상(알래스카조약)을 타결했다. 본토와도 떨어진 불모지를 막대한 예산을 들여 사들이는 바람에 매년 행정ㆍ군사 비용을 지출하게 된 것을 못마땅해 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미 하원은 긴 설전 끝에 이듬해 7월에야 세출을 승인했다.
알래스카는 하지만, 불과 10여 년 뒤인 1880년대 금광을 시작으로, 석유와 석탄 철광석 은 등 막대한 자원이 잇달아 발견되면서 추산할 수 없는 경제적 가치를 지닌 땅으로 판명됐다. 군사ㆍ지정학적 진가가 발휘된 것은 2차 대전 이후 냉전기였다. 알래스카는 해협과 북극해 너머의 소련을 봉쇄하는 천혜의 전초기지였다.
미 의회는 알래스카를 1912년 준주로, 59년 49번째 주로 승격했다. 알래스카 전체 인구는 2016년 기준 약 74만 명. 대부분 앵커리지 페어뱅크스 등 도시에 밀집해 있고, 그 중 에스키모와 알류트 족 등 원주민은 약 10만 명이다. 오늘은 ‘알래스카의 날’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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