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실상 재판 포기를 선언한 데 이어, 변호인단마저 전원 사임하면서 박 전 대통령 변호는 국선 변호인이 맡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로써 당분간 공판이 연기되는 등 재판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도 스스로 방어권을 놓아버린 악수가 됐을 뿐만 아니라 재판부에 부정적 인식을 강하게 심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16일 법원에 따르면 유영하 변호사 등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 7명의 사임계가 정식으로 접수됐다. 재판부도 변호인단이 재판 도중 사임 의사를 밝힘에 따라 17일 예정된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이 예정된 19일 공판까진 취소하진 않았지만, 변호인단이 사임 의사를 번복하지 않는 이상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형사소송법 33조에 따르면 피고인이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기소되면 반드시 변호인이 있어야 한다. 사선 변호인이 없는 경우 법원이 직권으로 국선 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 이날 사임한 한 변호인은 “박 전 대통령 결단이기 때문에 변호인들이 사임 결정을 번복하지 않을 것이고, 새롭게 변호인이 선임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국선 변호인이 지정되면 1심 재판의 연내 선고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매주 4회 재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갑작스레 선정된 국선 변호인이 10만 쪽이 넘는 사건기록을 단기간에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국선 변호인의 변론 준비를 위해서라도 상당기간 재판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 심리도 기존과는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국선 변호인이 선임된다고 해도 박 전 대통령이 새로운 변호인의 접견을 거부하는 등 조율 과정을 거부할 수 있다. 심지어 법정에 나오지 않아 국선 변호인만 참석한 가운데 재판이 진행되는 ‘궐석 재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법원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국선 변호인 접견을 거부하는 등 심리 진행이 원활하지 않으면 박 전 대통령 지지층에서 국선 변호인 교체를 주장할 것이고, 그런 식으로 재판이 공전될 여지도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법원 안팎에선 1~2주 정도 재판 지연이 불가피해도, 재판부가 심리를 장기간 연기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형사재판 경험이 풍부한 한 판사는 “심리할 쟁점이 여전히 많기 때문에 최소한의 준비기간을 보장한 뒤 직권으로 재판을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통상 피고인당 국선 변호인 한 명이 선임되지만 ‘사건 특수성에 따라 여러 명의 국선변호인을 선정할 수 있다’고 명시한 형사소송법 규칙에 따라 재판부가 다수 국선 변호인을 지정한 뒤 신속하게 재판을 재개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변호인이 누가 되고 몇 명이 되든, 재판 자체는 박 전 대통령에게 크게 불리할 것이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변호인이 사임했을 경우 바로 국선 변호인이 선정되기 때문에 재판을 지연하겠다는 전략을 염두에 뒀다면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재판 과정을 잘 모르는 새로운 변호인이 오게 되면 증인신문 과정에서 피고인 측 반대신문이 줄어드는 등 방어권 보장에 불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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