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장 전주까지 총출동
신한ㆍ국민 2파전 예상 깨고
600조원 기금 사업권 따내
우리은행이 자산 규모 600조원에 달하는 ‘공룡 기금’ 국민연금공단의 주거래은행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지난 10년간 주거래은행을 지켜왔던 신한은행은 최근 경찰공무원 대출사업을 KB국민은행에 빼앗긴데 이어 국민연금 사업권까지 우리은행에 내주면서 비상이 걸렸다.
국민연금은 16일 전북혁신도시에 있는 기금운용본부에서 주거래은행 선정을 위한 제안서발표회를 진행한 뒤, 우리은행을 차기 파트너로 선택했다. 국민연금은 현장실사와 기술협상 등을 거쳐 우리은행과 최종 계약을 맺게 된다. 이원희 국민연금 이사장 직무대행은 “엄정한 절차를 거쳐 우리은행을 선정했다”며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이 원활하게 지급되고 운용자금 업무가 안정적으로 이뤄지도록 철저히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장 5년 간의 사업권이 걸린 이번 입찰에는 국내 4대 시중은행이 모두 뛰어들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세계 3대 연기금의 주거래은행’이란 타이틀이 주는 무형의 가치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6월 말 기준 운용자산(기금적립금)이 597조8,000억원으로, 일본ㆍ노르웨이 연금과 함께 세계 3대 연기금으로 꼽힌다. 현재도 성장세가 계속되고 있어 2020년에는 자산이 847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열기를 반영하듯 실제 이날 발표장에는 미국 출장 중인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을 제외한 윤종규 KB금융 회장 겸 국민은행장과 위성호 신한은행장, 이광구 우리은행장 등 최고경영진이 총출동하기도 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지난달 22일 예정이었던 발표회 일정이 미뤄지고 장소도 서울에서 전주로 변경됐지만 각 은행장들이 아랑곳 않고 전주까지 달려왔을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당초 이번 입찰은 지난 10년간 주거래은행 자리를 지켜왔던 신한은행과 LG CNS와의 컨소시엄까지 구성해 도전장을 내민 국민은행의 ‘2파전’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치밀하고도 논리적인 설득 작전이 막판 대역전극을 이끌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국민자산을 굴리는 기관인 만큼 그간 투자수익률 못지 않게 자산의 안정적 운용과 보안을 중시해 왔는데, 우리은행은 이 부분을 적극 공략했다. 이광구 행장은 이날 발표장에서 “시중은행 최초로 기관고객본부를 만들고, 무려 102년 동안 서울시의 주거래은행을 맡아 공공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해 왔다”며 “IT설비 투자를 중시해 고객정보도 유출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은행은 우선 내년 3월부터 2021년까지 3년간 국민연금 2,183만 가입자에 대한 대금 수납, 436만 수급자에 대한 연금 지급, 기금운용 계좌ㆍ국고금 관리 등 업무를 맡게 된다. 이후 평가에 따라 1년씩 최대 2번 연장이 가능해 향후 5년간 주거래은행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우리은행 내부에선 국민연금 주거래은행 타이틀 획득이 향후 지주사 전환과 잔여지분 매각 등에 호재로 작용할 거란 기대감도 나온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분 매각과 지주 전환 등엔 무엇보다 안정적인 투자자 유치가 중요하다”며 “국민연금 주거래은행 효과로 기업 가치가 오르면 향후 투자설명회(IR)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1회전이 우리은행의 승리로 끝나면서 조만간 발표될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현재 우리은행) ▦국내 채권(국민) ▦국내 대체투자(하나) ▦사무관리(신한) 등 4개 분야 수탁은행 선정 결과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3월 기준 국내 주식 111조7,618억원, 국내 채권 281조1,958억원, 국내 대체투자 21조5,116억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 중이다.
강아름 기자 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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