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당비 내라”며 현금 긁어가고
번호판 교체 강제… 주민도 쥐어짜
“고강도 제재 속 자금 마련 고육책”
북한 정권이 돈벌이에 혈안이 됐다. 북한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국제사회의 초고강도 대북 제재 속에서 통치자금 마련을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는 양상이다.
16일 북한 국가관광총국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조선관광’에 따르면, 29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가을철마라톤애호가경기대회’가 처음 열린다. ‘만경대상 마라톤대회’라는 이름으로 1981년부터 매년 4월 열어 온 김일성 생일 기념 국제 마라톤 대회 외에 추계 대회를 하나 더 신설한 것이다. 코스는 김일성경기장을 출발해 여명거리와 창전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등 평양 주요 거리를 지나 경기장으로 되돌아오는 경로다.
여행 상품은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이다. 북한은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낚시나 자전거 투어, 스쿠버 등 스포츠 활동을 매개로 한 상품을 만들어 팔아왔다. 이번 마라톤 대회 관련 여행 상품 중 비싼 건 인당 가격이 2,650달러(약 300만원)에 이른다.
지금껏 자본주의 전유물이라는 이유로 배척해온 사행성 스포츠 산업 도입도 불사하는 분위기다. 최근 북한 관영 조선중앙TV는 “미림승마구락부에서 가을철 승마애호가경기를 위한 준비 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며 “승마 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경마추첨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람자가 마권을 사고 우승 예상마를 고른 뒤 경주 결과에 따라 배당금을 받는 경마는 대표적 사행 산업으로 꼽힌다.
체육진흥투표권(스포츠토토)과 비슷한 스포츠도박도 등장했다. 북한 대외선전 매체인 ‘조선의 오늘’은 얼마 전 “공화국에서 남자 축구 1급 경기가 진행되는 것을 계기로 흥미 있는 축구 경기 승부 알아맞히기 추첨이 진행된다”며 “10월 12~26일 열리는 경기 중 13개 대전팀을 선택해 각 대전팀의 승부를 알아맞히는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사실상 강제 착취도 마다치 않는다.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는 이날 “당과 근로단체 등 각 기관이 밀린 당비와 직맹비(노동자들이 단체에 내는 돈) 등 세외 부담들을 총화(결산)하라는 독촉을 매일 하고 있다”는 북한 소식통의 전언을 소개하며 “대북 제재로 자금 융통이 어려워진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상대로 현금을 수탈하고 있다는 지적”이라고 보도했다. 북한 노동자들은 월급의 일정 비율을 떼어 당비와 직맹비를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체에 따르면 또 북한 당국은 지난해 말부터 전국 모든 차량 번호판을 신형으로 바꾸게 하는 과정에서 번호판 개당 중국돈 114위안(약 2만원)을 내라는 강요를 했다고 한다. 지난달 말부터는 번호판을 교체하지 않은 차를 대상으로 주민 통행과 물품 유통을 직접 통제하는 ‘10호 초소’ 통과까지 차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북한이 안팎을 가리지 않고 자금을 끌어 모으는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외화 벌이 창구가 막히고 자금줄이 끊기면서 갈수록 심화하는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당국과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현재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화에 대응해 ‘자력갱생’ 등을 강조하면서 내부 체제 결속을 도모하는 한편, 외화 직불카드 장려와 휴대폰 사업 등을 통해 시중 외화를 흡수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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