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표 후 관계급속 악화
석유 이권 다툼 성격도 커
이라크軍 “여러지역 장악”
자치정부 “도시 지켜낼 것”
지난달 25일 쿠르드 독립 주민투표 이래 팽팽한 대치를 이어 온 이라크 중앙정부와 쿠르드 자치정부가 결국 북부 거점 도시 키르쿠크와 주변 유전지대의 지배권을 놓고 무력 충돌했다.
이라크 국영 알이라키야방송은 15일(현지시간)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의 명령에 따라 이라크 정부군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민병대 민중동원군(PMF)이 쿠르드 민병대 ‘페슈메르가’가 장악하고 있는 키르쿠크로 진격, 서부와 남부의 여러 지역을 장악했으며 여기에는 K1 공군기지, 발전소, 산업지구 등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페슈메르가 측은 AP통신에 “우리는 철군하지 않았으며 공항을 사수하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양측 군 관계자는 키르쿠크 남쪽에서 정부군과 쿠르드군이 서로를 향해 카츄사 로켓을 발사했다고 전했으며, AFP통신에 따르면 충돌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양 측은 정확한 사상자 숫자를 밝히지 않고 있다.
쿠르드 독립 주민투표가 압도적인 찬성으로 결론 난 후 이라크 중앙정부는 쿠르드 자치정부를 계속해서 압박해 왔다. 이라크 정부는 주민투표 종료 직후 쿠르디스탄을 비행 금지구역으로 설정했고 터키ㆍ이란ㆍ시리아와 협력해 쿠르디스탄 국경도 완전히 봉쇄했다. 15일 양측의 협상이 소득 없이 끝난 가운데 중앙정부는 쿠르드 자치정부에 독립투표 결과 발표 철회와 키르쿠크로부터 민병대 철수를 요구했지만 쿠르드 측은 둘 다 거부했고, 결국 충돌로까지 이어졌다.
키르쿠크가 양측의 분쟁 지역이 된 이유는 쿠르디스탄 자치령에 포함돼 있지는 않지만 과거 쿠르드인 거주 구역이었고 2014년 이래 실질적으로 쿠르드 민병대가 치안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집단 이슬람국가(IS)가 북쪽 거점도시 모술을 장악하면서 이라크 정부군은 키르쿠크에서 철수했는데 쿠르드 민병대가 그 공백을 메운 것이다. 나즈말딘 카림 현 키르쿠크 주지사도 쿠르드 출신이다. 카림 주지사는 쿠르드 언론매체 루다우에 “수많은 청년이 페슈메르가와 함께 도시를 지킬 준비가 돼 있다”라며 방어를 독려했다.
하지만 양측의 대결은 키르쿠크 일대의 유전 지배권을 놓고 벌이는 이권 다툼의 성격도 짙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하루에 약 56만배럴을 생산해 터키 방면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출하는데 이 중 절반 가까이가 키르쿠크 일대에서 생산된다. 쿠르디스탄 전문가인 이탈리아 법률자문업체 카두치컨설팅의 숀 줄랄은 영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유전지대가 공격받으면 석유 생산이 중단되고 쿠르드는 큰 자금원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 중앙정부는 IS가 이라크 북부를 점거했을 때는 쿠르드 측 파이프라인에 석유 수출을 의존했지만 IS 축출 후에는 자체 파이프라인 수리를 추진하고 있다.
이라크 정부와 쿠르드 자치정부는 올 초까지만 해도 모술을 비롯한 이라크 북부에서 IS의 축출을 위해 공동 전선을 펼쳐 왔지만 쿠르드 자치정부가 ‘몸값 높이기 전략’의 일환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하면서 관계가 급속히 냉각됐다. 터키와 이란도 자국 내 쿠르드족이 독립 쿠르디스탄의 출현에 영향받을 것을 우려해 이라크 쿠르드 독립투표에 반대했다. IS 퇴치전에서 쿠르드의 동맹이었던 미국과 유럽도 ‘하나의 이라크’를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미 국무부는 양측에 대화로 분쟁을 해결할 것을 주문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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