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성추행... 덮으려는 엄마...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입력
2017.10.16 04:40
23면
0 0
일러스트=김경진 기자 jinjin@hankookilbo.com
일러스트=김경진 기자 jinjin@hankookilbo.com

아버지 폭력 탓 엄마는 늘 불안

성추행 털어놔도 눈물만 흘려

다행히 따뜻한 남자 만나 결혼

가족들도 아무 일 없는 듯 지내

어두운 과거 떠올라 비참해요

요즘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고 가슴이 답답해 이렇게 토해내듯 글을 씁니다. 지금 제 삶은 남들 눈엔 평범하고 행복해요.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엔 아무에게도 말 못한 더럽고 추악한 과거가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화가 나면 집안 살림을 다 부수거나, 저와 제 남동생을 심하게 때렸습니다. 4,5살 때 깨진 유리 파편 위에 이불을 깔고 엄마와 잔 기억이 생생해요. 식칼을 들고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한겨울에 팬티만 입혀 쫓아내기도 했어요. 화를 내는 이유는 매번 달랐습니다. 어머니가 항상 하는 얘기가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화를 내는지 알 수가 없다”였으니까요.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거북한 사람이라 아래선 그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그 사람을 증오하게 된 건 성추행 때문입니다. 제 몸이 크면서 그 사람은 자주 “엉덩이 좀 만져보자”며 제 팬티 속에 손을 넣곤 했습니다. 엉덩이를 만지면서 제 성기를 만질 때도 있었어요. 엄마가 있을 때도 그러다 보니 엄마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수치스러웠지만 어릴 때라 그게 무슨 일인지도 몰랐어요.

정말 불쾌했던 건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입니다.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온 그 사람은 현관문 앞에서 저를 부르더니 “엄마 집에 있냐”고 묻더군요. 그러더니 저를 덥석 안고 팬티 속에 손을 넣어 엉덩이를 주무르기 시작했어요. 너무나 놀라고 불쾌했지만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렇게 몇 분을 있었어요. 제가 엄마를 찾아오겠다며 도망치듯 나갈 때까지요. 그때의 두렵고 분하고 수치스러운 감정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엄마한테 말할까 고민도 했지만 엄마도 의지가 되는 존재는 아니었어요.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엄마는 늘 불안한 상태라 그 화를 저한테 풀곤 했어요. 다행히 저는 따뜻한 남자를 만나 서른 살에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드디어 이 더러운 늪 같은 곳을 떠나 새 삶을 시작한다는 설렘에 행복했죠. 그런데 결혼 전 일이 터졌습니다. 또 분을 못 참고 엄마에게 화를 내는 그 사람에게 전 “이젠 그만 하라”며 소리를 질렀고 그 사람은 절 죽여버리겠다며 제 목을 졸랐습니다. 울며불며 뜯어말리는 엄마 옆에서 토해내듯 과거의 성추행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알고 있더군요. 크게 놀라며 "기억하고 있었냐?"고 하더니 "신고하려면 해, 감방에 쳐 넣으려면 쳐 넣어"라고 하더군요.

엄마는 충격 받은 듯이 보였어요. 제가 늘 방문을 잠그고 자서 혼이 났는데, 제가 왜 그랬는지 이제야 알겠다며 우시더군요. 정말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어요. 그 일이 있고 예정보다 일찍 집을 나와 신랑과 살림을 차렸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뒤로 저와 가족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낸다는 거예요. 친정 행사가 있을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었지만, 그 사람을 보는 날에는 항상 체하거나 몸이 아팠어요.

한편으론 가엾기도 합니다. 그 사람은 초등학교도 졸업 못 했어요. 돈 벌어오란 아버지 성화에 12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했고, 집과 공장에서 늘 얻어 맞았다고 합니다. 한번은 가족들끼리 술 마시다가 울면서 옛날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렇게 본인을 힘들게 했는데도 친가에 가면 속없이 웃다가 갑자기 사라져요. 불안한 아이 같습니다. 뭐가 맞고 틀린 지도 배우지 못한… 그래서 저에게 그런 걸까요? 저도 물어보고 싶어요. 그 이유를 알면 제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엄마는 그 사람과 다툴 때마다 전화를 해 도망가고 싶다고 합니다. 행복한 신혼을 보내는 저에게, 엄마의 불행은 저를 예전의 그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요. 매일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걸던 저는 요즘 모든 연락을 끊었습니다. 엄마가 장문의 메시지를 몇 번 보냈는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어떻게 물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덮고 넘어가려고 했다더군요. 그 말이 너무나 비참해요. 제가 그 동안 침묵을 지켰던 건, 입을 열면 가족이 깨질까 봐서였어요. 하지만 제 어두운 시간을 덮고 넘어가려는 가족을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지… 전 지금껏 뭘 한 걸까요.

김선우(가명ㆍ회사원ㆍ32)

사랑ㆍ보호 제공이 부모의 의무

아버지, 인간의 도리 못 지켰고

엄마는 너무나 가식ㆍ병리적 모습

잠시 원 가족과는 거리를 두고

새로운 가정서 안정ㆍ행복 찾아야

선우씨, 저는 선우씨가 아버지를 ‘그 사람’이라고 부르는 게 당연하게 느껴져요. 선우씨에겐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니었어요. 인종과 국가를 불문하고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자식에게 사랑과 보호를 제공하는 겁니다. 그런데 선우씨 아버지는 그 역할을 하나도 안 했어요. 오히려 자식을 공격했죠. 그것도 아주 심각하고 공포스러운 공격이었어요.

아버지가 한 행동은 금수보다 못한 행동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아요. 성추행, 특히 자식에게 하는 성추행은 짐승보다 못한 일입니다. 그럼 아버지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모두 이런 행동을 할까요?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다워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될 수 있는 잠재력을 발달시켜주는 것이 교육이에요. 거꾸로 말하면,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면 인간답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이 돼요(여기서 교육은 좋은 대학이 아니라 포괄적인 배움을 뜻합니다). 그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은 다 선우씨 아버지와 같은 행동을 할까요? 그렇지 않아요. 인간다워지기 위해 교육을 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아버지의 경우 교육을 못 받은 것 외에도 다른 문제가 있는 걸로 보여요.

아버지는 반사회적인 인간입니다. 사회 구성원끼리 세운 규칙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방법을 몰라요. 이는 나고 자란 가정의 영향이 큽니다. 선우씨에게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니었듯이, 친할아버지 역시 자식들에게 아버지가 아니었어요. 친할아버지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자식은 그저 필요에 따른 노동력일 뿐이에요. 돈이 필요하면 돈 벌어올 일꾼, 짐 날라야 할 땐 짐꾼, 밥 지어야 할 땐 가정부, 심지어 자신의 성욕 앞에선 그 욕구를 해소할 여자로 자식을 보고 있는 거예요. 정말 금수만도 못하다는 표현이 딱 맞아요.

이런 사람들이 감옥에 가면 반성을 할까요? 아니에요. 아버지의 머리 속엔 최소 20년 간 발달했어야 할 인간으로서의 도리나 역할에 대해 구멍이 뻥 뚫려 있어요. 그러니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죠. 선우씨의 표현이 정확해요. 뭐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인 거예요.

선우씨의 엄마는, 만약 상황이 좀더 나았다면 지금과는 다르게 행동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딸 입장에선 자기 안위에 급급한 사람일 뿐이었죠. 성인이 된 뒤 여자로서 엄마에게 연민을 느낄 순 있겠지만, 한편으론 남편과 딸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엄마로부터 버림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엄마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을 겁니다.

우리가 성폭행 피해자를 대할 때 유의할 점은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편들어줘야 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뺑소니 사고를 당해 누워 있는 사람에게 가해자가 찾아왔다면 주변의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어 비난하겠죠. 하지만 성폭행 사건에선 그러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쉬쉬하고 덮으려고 해요. 부모가 덮으려는 듯한 태도를 보일 때 자식은 그게 자기 잘못이라 그런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폭행에 자신이 기여했다는 인상을 받는 거예요. 그러므로 자녀가 성폭행 당했을 때 부모는, 가해자를 잡든 못 잡든 적극적으로 나서는 걸 보여 줘야 해요. 그게 자녀가 상처에서 가장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런데 선우씨의 엄마는 알고도 덮었죠. 저는 선우씨 사연을 보면서 마음이 아픈 동시에 정말 화가 났어요. 남편이 딸을 성추행했다는 걸 뻔히 아는데, 가족이 모여서 ‘하하호호’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너무나 가식적이고 병리적이에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우씨는 가족과 연을 끊는 걸 힘들어하죠. 그 마음도 전 이해가 가요. 부모에게 받지 못한 보호와 사랑의 결핍이 너무 크면 자식은 그걸 평생 채우려고 들어요. 이런 걸 ‘수도 인디펜던스(pseudo-independence)’, 즉 허구의 독립성이라고 합니다. 겉으로는 똑 부러진 독립적 인간으로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엔 언제나 나를 좀 돌봐줬으면 하는 의존성이 있는 거예요.

하지만 선우씨, 이건 부모가 채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설령 채워준다 해도 그게 바람직한 일도 아닙니다. 성인이 된 뒤엔 자기 자신이 채워야 해요. 선우씨의 훌륭한 점은 아버지와 전혀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거예요. 선우씨 같은 환경에서 자란 여자들의 상당수가 아버지와 비슷한 남자를 만납니다. 가학과 피학의 요철이 맞아 떨어져 불행을 반복하는 거예요. 하지만 선우씨는 그런 악연의 고리를 끊었어요. 불행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선우씨가 늘 깨어 있었다는 뜻이에요. 아주 훌륭한 겁니다.

지금 선우씨가 할 일은 원 가족에게서 잠시 거리를 두고 새로 만든 가정에 집중하는 거예요. 원 가족과의 얽힌 감정을 해결하는 것, 새로운 가족과 안정적인 삶을 꾸리는 것, 이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는 여력이 선우씨에겐 없어요. 아버지에게 느끼는 적개심은 본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클 수 있어요. 스스로에게 무리한 걸 요구하지 마세요. 지금 자신에게 여력이 없다는 걸 인정하라는 겁니다.

가족과 연을 끊으라는 게 아니에요. 엄마와 외식을 한다든지, 남동생 집에 방문한다든지, 가족모임에 가지 않고도 가족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눈물이 잦아 들고 마음의 요동이 가라앉을 때까지, 선우씨가 택한 새로운 가족과 더불어 안정과 회복에 매진하세요.

정리=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