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트라우너 몬시뇰 선종
부산에서 반평생을 봉직한 파란 눈의 신부 안톤 트라우너(95ㆍ한국명 하 안토니오ㆍ사진) 몬시뇰(가톨릭 고위 성직자의 경칭)이 14일 새벽 숙환으로 선종했다. 이날은 그가 독일 남부 베르팅겐에서 태어난 지 정확히 95년째 되는 날이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4년간 포로생활을 했던 그는 북한에서 선교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독일인 신부에게서 한반도 생활을 전해 듣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사제서품을 받은 지 3개월, 서른 여섯이라는 젊은 나이로 전쟁의 참화가 채 가시지 않은 한국에 왔다.
1958년 7월 5일 일본에서 화물선을 타고 한국땅을 밟은 그는 부산 남구 우암동 동항성당의 1대 신부를 맡았다. 그는 달동네 성자로 불렸다. 우암동 판자촌에 정착해 평생을 빈민구제와 교육사업에 헌신했고, 사재를 털어 구입한 밀가루와 옷을 피난민들에게 나눠줬다.
가난한 학생들의 자립을 위해 재봉틀 10대를 후원 받아 1965년 설립한 기술학원은 한독여자실업학교(현 부산문화여고)의 모태가 됐다. 1977년 세운 조산원은 인근 병원이 생기며 폐업한 1992년까지 신생아 2만6,000여명의 요람 역할을 했다.
6ㆍ25전쟁 이후 한반도 분단 실정을 체험했기에 그는 평화통일을 간절히 기원했다. 생전 “강력한 무기와 군사력이 아닌 기도에 의해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다”던 그였다.
1964년 가톨릭교회 국제단체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군대) 한국본부를 세워 남북 평화통일에 앞장섰다. 2015년에는 임진각에서 1.2㎞ 가량 떨어진 곳에 ‘파티마 평화의 성당’을 건립하고 매년 세계평화와 남북 평화통일을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이 같은 다양한 사회적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가톨릭교회의 고위 성직자를 높여 부르는 ‘몬시뇰(Monsignor)’에 임명됐다. 프랑스어가 어원인 몬시뇰은 ‘나의 주님’을 의미, 덕망 높은 성직자가 교황에게 칭호를 받는 것이다. 2011년 부산 명예시민이 됐고, 2015년에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그의 장례미사는 16일 오전 10시 부산 수영구 남천동 남천성당에서 열린다.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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