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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표적·보복 청산은 반대다

입력
2017.10.15 12: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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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말기인 2013년 1월 국무회의 주재를 위해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 고영권 기자
집권 말기인 2013년 1월 국무회의 주재를 위해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 고영권 기자

세상이 온통 적폐 천지다. 집권 여당이 적폐 청산에 몰두하니 야당은 방어막을 치느라 신적폐로 어깃장을 놓았다. 북한 핵·미사일을 포함한 심각한 안보 위기의 외풍이 몰아치는데도 안에서는 과거에 발목이 잡혀 옥신각신하는 형세다. 청와대까지 가세하면서 적폐청산은 문재인 정부 초반의 국정 목표가 된 듯싶다.

한해 정치를 마무리하는 국정감사에서도 적폐청산이 대세다. 통상 국정감사는 야당이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성토의 장이기 마련이지만 특이하게도 올해는 입장이 정반대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적폐 청산’을 외치며 국감을 주도하면서 야당의 설 자리가 없어진 탓이다. 자유한국당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적폐의 원조’라고 떠들고 있지만 메아리가 약하다. 야당이 합세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고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며 안보 위기론을 설파해도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던져놓은 이른바 ‘대통령훈령 불법조작 사건’의 매머드급 파장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집권 초반 과거사 청산을 외면할 수는 없다. 더구나 정권 교체 이후라면 지지층 결집 차원에서라도 이전 정부를 부정하고 밟고 올라설 필요가 있다. 새로운 비전과 국정 철학 또한 과거 정부와의 비교 속에 더욱 선명해지기 마련이다. 이명박(MB) 정부의 실정과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을 재조명하면서 문재인 정부는 소통과 통합의 반면교사로 삼을 수도 있겠다.

특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두 가지 재판과 관련해 진실 규명 차원의 과거사 청산도 필요하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공작 사건’ 재판과 동시에 진행되는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팀의 맹활약이 우선 놀랍다. ‘국정원의 보이지 않는 손’이 MB정부 시절 문화·예술계에서 벌어졌던 납득할 수 없는 거의 모든 사건을 조정했다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난 마당에 MB정부 청와대도 책임이 가볍지 않다. 세월호 참사 훈령 조작 의혹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재판에 더해져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동서고금에서도 적폐 청산의 역사는 면면하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암투와 모함 속에 피비린내 나는 인적 청산이 왕조시대 살풍경이었다면 근현대 이후로는 제도와 시스템이 청산의 대상이었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과 부패·비리의 폐단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국가 사회 전반의 대수술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우리 현대사에서는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자처벌 및 군부 독재 청산을 위한 5공 청문회 등이 주요한 계기였다. 구체제 결별을 명분 삼아 누적된 폐단에 책임 있는 인물에 대한 문책과 처벌이 이어지기도 했다.

적폐 청산은 그렇게 물 흐르듯이 흘러가게 두면 족하다. 앞선 정부의 폐단이 극심하다면 국정원 TF처럼 법과 제도의 틀 속에서 진행하면 될 일이다.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불법이 확인되면 합법적 절차 속에서 단죄와 문책이 이어지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국정농단의 원죄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식의 표적 청산은 아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정원 여론조작과 4대강 사업에 대한 여권의 공세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제2롯데월드 인허가를 둘러싼 검찰수사로 이 전 대통령을 처벌하는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거론되는 모양이다. 이 전 대통령이 결과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다는 친노·친문 그룹의 인식과 분노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보복을 해서는 안될 일이다.

표적과 보복의 청산은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일 뿐이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동시에 감옥에 갇히는 상황 또한 어찌 국민이 행복할 일이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지만 이번 선거를 계기로 종식돼야 한다”고 밝힌 취지를 모두가 되새길 일이다.

김정곤 정치부장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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