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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그런 사연 없어요!”

입력
2017.10.15 11:0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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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창 밖에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는 한 여자를 비추고 있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화면 아래 ‘한 부모 가족’이라는 자막이 떠있다. 싱글맘이 울고 있다는 짐작을 하게 한다. 카메라가 창문 안으로 들어가니 여자는 얼굴을 가렸던 손을 떼며 아기에게 ‘까꿍’하고 장난을 친다. 엄마의 장난에 아기는 까르르 웃는다.

다음 장면에는 베트남 출신으로 보이는 여자가 찡그리고 있다.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화면 하단의 자막은 ‘다문화 가족’. 카메라가 빠져 보니 여자의 양 옆에서 남편과 아이가 안마를 하고 있다. 몸이 쑤시는 아내와 엄마를 위한 서비스다. 이어지는 화면에는 험상궂은 표정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조손 가족’이라는 자막 같이 뜬다. 자막 때문인지 노부부의 얼굴이 힘들어 보인다. 그런데 바로 옆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셀카를 찍기 위해 휴대폰을 들고 활짝 웃는 손녀가 보인다. 노부부는 손녀를 위해 일부러 재미있는 표정을 지은 것이다.

영상이 보이는 동안 CM송이 흐르는데 ‘그런 사연 없어요’라는 가사가 반복해서 들린다. 우리 곁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존중하자는 주제로 올해 5월 전파를 탄 공익광고의 내용이다. 전체 카피를 보자.

자막) 한부모 가족 이수정씨

Song) 슬플 거라 생각 말아요.

그런 사연 없어요.

자막) 다문화 가족 따오씨

Song) 불편할 거라 생각 말아요.

그런 사연 없어요.

자막) 조손 가족 박귀남씨

Song) 힘들 거라 생각 말아요.

그런 사연 없어요.

사랑하고 존중하는 우리는

오늘도 행복해요.

박칼린)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존중할 때 행복이 더해집니다.

자막) 한 부모 양육비 상담 1644-6621

(공익광고협의회_TVCM_다양한 가족과 포용_2017_카피)

광고는 한 부모 가족이니 슬프고, 다문화 가족이라서 불편하고, 조손 가족은 힘들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볍게 꼬집는다. 저런 가정에는 뭔가 불행한 사연이 당연히 있을 것 같다는 편견을 부끄럽게 만든다. 광고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모델은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를 둔 음악감독 박칼린이다. 그녀도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고 놀림을 받았을지 모르겠다. 광고 내용에 꼭 맞는 모델 캐스팅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나라의 가족 형태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흔히 우리가 ‘가족’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4인 가구는 2015년 기준 전체 인구의 26.4%에 불과하다. 반면에 가족원 수가 1명인 경우는 21.3%, 2명인 경우는 22.9%다. 한 부모 가족, 조손 가족, 다문화 가족도 늘어나고 있어서 2015년의 경우 초등학생 중 다문화 가정의 학생은 2%를 차지한다. 장애우 가족이나 성소수자가 꾸린 가족, 비혼이나 졸혼을 선택한 가족도 우리 곁에 존재한다. 숫자로만 보면 막연히 가장 많을 것이라고 여겼던 4인 가족의 비중은 오히려 소수에 불과하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다른 형태의 가족을 이루고 사는 이들을 보며 편견이 섞인 시선을 보내곤 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불행한 사연을 상상하기도 했다. 모든 가족들에게 저마다의 사연이 있듯이, 조금 다른 그들에게도 물론 다양한 사연이 있다. 다문화 가족이라고 해서 더 슬프거나, 조손 가족이라서 더 힘든 것은 아니다. 광고는 ‘그런 사연 없어요’라는 역설로 우리가 편견으로 그 가족들에게 힘들고 어려운 사연을 보태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요구한다.

내게 제일 힘든 사연은 우리 집의 사연이고, 내게 가장 슬픈 사연도 우리 집의 그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집 사연을 비극으로 상상하지 말고, 내 집의 사연에 집중하자. 다른 가족을 향한 삐딱한 시선을 거두고 내 집의 슬픔을 더 깊이 토닥이고 내 집의 기쁨을 더 흠뻑 만끽하자.

공익광고협의회_TVCM_다양한 가족과 포용_그런 사연 없어요 편_2017_스토리보드

공익광고협의회_TVCM_다양한 가족과 포용_그런 사연 없어요 편_2017_유튜브링크

정이숙 카피라이터ㆍ(주)프랜티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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