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췌한 얼굴로 재판에 출석하는 피고인 박근혜와 환하게 웃는 대통령 박근혜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최고 권력기관에서 뇌물수수 피의자로 전락한 박 전 대통령의 운명, 영광과 치욕의 대비는 그가 입고 있는 ‘같은 옷’에 의해 더욱 극명해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 기간 내내 ‘사복 출석’을 고수해 왔다. 국정농단 사건 첫 공판이 열린 5월 23일부터 구속기간 연장이 결정된 13일까지 그가 입은 사복은 상의 기준 총 5벌이다. 진한 회색과 남색 등 어둡고 차분한 색상은 ‘외출복’은 모두 대통령 재임 중 입었던 옷이다.
박 전 대통령은 행사의 성격이나 강조할 메시지에 따라 옷 색깔을 직접 선택할 정도로 ‘패션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피고인이 입은 대통령의 옷에선 아련한 ‘패션 정치’의 향수와 더불어 국정농단의 어두운 기억이 묻어난다.
#1 위엄은 어디로… 진한 남색 재킷
박 전 대통령은 진한 남색 옷감에 단추가5개 달린 재킷을 입고 첫 공판에 출석했다. 그는 재임 중 이 재킷을 두 차례 입었다. 지난해 6월 23일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와 10월 21일 제7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재킷을 포함한 남색 또는 군청색 계통의 옷을 안보 관련 행사에서 자주 입었다. 군인이나 경찰 등 참석자들의 제복 색깔과 어울리면서 대통령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레와 같은 박수에 환한 미소로 답하던 대통령의 재킷은 수갑을 찬 뇌물수수 피의자의 ‘외출복’으로 전락했다. 피고인 박근혜는 이 재킷을 6월까지 입었다.
#2 ‘자괴감 드는’ 진한 회색 재킷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2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자리에 박 전 대통령은 어두운 회색 재킷을 입고 나섰다. 당시 그는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끝내 지키지 않았고, 결국 피고인으로서 같은 옷을 입고 국민 앞에 다시 섰다.
옷에 남은 어두운 기억은 또 있다.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10월 27일 국회에서 예산안 시정연설을 할 때 동일한 재킷을 입었다. 그는 이날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확고한 국가관을 가지고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 역사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당연한 과제이자 우리 세대의 사명”이라는 대통령의 주장 앞에서 야당 의원들은 ‘국정교과서 반대’ 피켓을 들었다. 논란 끝에 결국 백지화 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청산되어야 할 대표적인 적폐로 꼽혔다. 대통령 박근혜는 총 4 차례 이 재킷을 입었고 수감자 박근혜는 6월 중순과 9~10월 사이 이 옷을 입고 재판에 나섰다.
#3 피고인에 더 어울리는(?) 쥐색 재킷
2015년 7월 13일 흰색 띠가 들어간 칼라의 쥐색 재킷을 입은 박 전 대통령이 현기환 신임 정무수석과 기념촬영을 했다. 현 전 수석은 엘시티 이영복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같은 해 6월 9일 미 태평양사령관 접견을 포함해 대통령 재임 중 단 2 차례만 입은 이 재킷을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은 7월과 8월 8차례 이상 입었다.
#4 국정농단의 추억… 회색 재킷
2014년 새누리당 지도부를 초청한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이 회색 재킷을 입었다. 환하게 웃으며 입장하는 박 전 대통령 뒤로 국정농단 세력으로 지목된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과 조윤선 정무수석의 흐뭇한 미소가 눈에 띈다.
본보 뷰엔팀은 박 전 대통령이 취임 후 2년을 기준으로 옷 한 벌 당 평균 3.3회를 입은 것으로 파악했다. 새 옷을 구입해 단 한 번만 입은 경우도 있었다. (☞관련기사: 대통령 패션의 완성은 ‘블루, 그린’) 박 전 대통령의 취향과도 거리가 있었던 이 회색 재킷은 재임 기간을 통틀어 단 2 차례 입었다. 수감자의 외출복으로서도 자주 선택 받지 못했다. 그는 이 재킷을 올해 8월 중순 경 약 5 차례 정도만 입었다.
#5 같은 옷 다른 느낌… 남색 재킷
구속기한 만료를 3일 앞두고 연장이 결정된 13일 박 전 대통령이 입은 외출복은 재임 중 5 차례나 입은 남색 사선 칼라 재킷이었다. 그는 2015년 국군의 날과 경찰의 날 기념식, 2016년 전국 시도지사 초청 행사 등에 이 재킷을 입고 참석했다. 특히,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거수경례를 하는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은 같은 옷을 입고 교도관의 손에 이끌려 법정으로 향하는 초췌한 모습과 대조적이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