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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원조의 딜레마… “목적 벗어나도 체제 흔드는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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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원조의 딜레마… “목적 벗어나도 체제 흔드는 효과”

입력
2017.10.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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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정보센터, 탈북민 조사 결과 공개

원조식량 받은 적 있다는 응답자 4% 불과

대부분 시장 유통… 판매 수익 통치자금化

“그래도 필요… 주민 인식 변화 유도 가능”

현재 20대 중반인 북한 주민 상당수는 어렸을 때 먹었던 ‘세계식량계획(WFP) 비스킷’을 기억한다. WFP 홈페이지 화면 캡처
현재 20대 중반인 북한 주민 상당수는 어렸을 때 먹었던 ‘세계식량계획(WFP) 비스킷’을 기억한다. WFP 홈페이지 화면 캡처

국제사회의 인도적 대북 지원 물품은 북한 주민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을까. 전용(轉用) 가능성이 없다는 정부 주장을 강력히 반증하는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중간에 빼돌려져 시장에 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괘씸해도 원조를 중단하기 어렵다는 게 딜레마다.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은 데다, 원조 자체가 체제를 흔들 수 있어서다.

최근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연 ‘2017 북한인권백서’ 발간 기념 세미나에서 NKDB 산하 ‘북한유엔권고이행감시기구’의 송한나 연구원이 발표한 ‘북한 인도적 지원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라는 제목의 발표문에는 탈북민 대상 조사 결과가 포함됐다. 조사에 따르면 북한에 거주할 당시 북한에 식량이 지원됐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응답자가 전체 조사 대상의 41%에 달했고 어떤 형태로든 원조 식량을 받은 적이 있다고 대답한 탈북민은 고작 4%였다.

이는 원조 식량이 주민에게 곧장 지원되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라는 것이 송 연구원 설명이다. 식량뿐 아니다. 임산부나 아동에게 공급되기로 했던 국제기구의 혼합강화식품이나 영양과자들도 중간 과정에서 유용되거나 시장에서 판매되기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송 연구원은 전했다. 그는 “북한의 원조 물품 배분 방식은 고위층이 물품을 시장에 유통하면 일반 주민들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상품을 구매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의약품도 적소(適所)에 제대로 가는 법이 없다. 송 연구원 말은 이렇다. “북한에 지원되는 의약품은 외무성을 통해 전달되는데 병원 등 수요처에 도달하기 전 먼저 관리자에 의해 착복되고 빼내어진 의약품은 장마당(시장)에 흘러 들어간다. 원조 목적 의약품을 상업 의약품으로 둔갑시켜 시장에 넘기는 일은 대체로 북한 정권의 통치자금을 조성하는 국영무역회사들 몫이다. 하부 기관이 약국과 병원에 공급할 의약품을 확보하려고 상부에 뇌물을 바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당국 통치자금으로 흡수되기 일쑤다.” 더욱이 전시(戰時) 체제를 상시 유지하고 있는 북한의 경우 원조 의약품마저 전량이 배분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송 연구원의 전언이다. 일부가 전시 물자로 비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조품이 엉뚱한 곳으로 샌다고 원조 효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송 연구원은 “원조가 있으면 간접적 혜택이라도 주민에게 돌아가게 된다”며 “보다 많은 양의 식량과 의약품, 다른 일용품들이 장마당에 유입되는 것은 원조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마당에서 식량 가격이 내려간 것을 통해 국제기구 원조품이 유입된 것을 알게 됐다는 탈북민 증언을 인용하면서다.

원조는 북한 주민에게 외부와의 교류 창구도 되는데, 접촉은 인식 변화를 유도한다. 타깃에서 벗어나도 체제를 교란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는 것이다. 송 연구원은 “원조 기관에 파견된 북한 직원은 당국의 선전과 괴리된 실상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목격하며, 북한이 얼마나 국제 원조에 의존하고 있는지 그 실상을 파악하게 되고 정권의 이념적 근간인 주체사상의 취약성도 깨닫게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우연하고 간접적인 효과가 모니터링 실패를 면책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인도 지원 활동가들은 원조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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