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최악의 협정” 발언... ‘오바마 지우기’인 듯
“언제든 탈퇴 가능” 엄포… 재협상ㆍ파기 압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결국 13일(현지시간) 불인증 선언을 함에 따라 2015년 7월 극적으로 타결됐던 ‘이란 핵 협정’은 2년여 만에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파기 선언에까진 이르지 않아 일단 최악의 파국은 면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든 협정 탈퇴가 가능하다”며 특유의 으름장을 놓았고 이란도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북한에 이어 이란발(發) 추가 핵 위기가 촉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직접 발표한 성명을 통해 “내가 가진 사실관계의 기록에 비춰 오늘 이것(협정 준수)을 인증할 수 없고 하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테러와 폭력, 핵 위협이 악화하는 뻔한 결론이 예상되는 길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란은 여러 차례 협정을 위반했고 협정의 정신에 부응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란이 북한과 거래를 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북한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위협은 방치할수록 더 심각해진다” 등 북한 관련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이날 불인증 선언과 함께 발표된 새로운 ‘포괄적 대(對) 이란 전략’의 내용은 ▦테러 지원 활동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국과의 공조 ▦테러 지원을 막기 위한 추가 체재 ▦미사일ㆍ무기 확산 대응 ▦핵무기로 가는 모든 경로 차단 등이다. 미 재무부는 이에 맞춰 이란 정예군인 혁명수비대(IRGC)를 추가 제재 대상에 즉각 올리기도 했다
특히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체결된 이란 핵 협정에 대해 그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써 왔던 ‘최악의 협정’이라는 혹평은 이날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는 이란 핵협정을 ‘가장 일방적이고 최악인 거래’라면서 “기껏해야 이란의 핵 개발 능력을 잠시 지연시키는 협상은 미국 대통령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란 핵 협정은 ‘이란 핵 개발 중단-서방의 대이란 제재 해제’를 골자로 2015년 7월 이란과 서방 6개국이 체결한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이며, 지난해 1월 발효됐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불인증 선언이 ‘오바마 유산 지우기’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정치적 부담이 큰 ‘일방적 파기’ 대신 불인증 선언이라는 옵션을 택해 일단 공을 의회로 넘겼다. 의회는 이제 60일 안에 제재 재개 여부를 논의해 결정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의회와 동맹국이 서로 협력해 이란 핵 협정의 많은 결함을 해소해 달라”면서 이란 핵 합의 검증법(INARAㆍ코커-카딘 법)의 개정도 주문했다. 구체적으로는 협정 위반 시 즉각 제재를 발동하는 자동개입(트리거) 조항 강화, 일정시간 후 효력이 소멸되는 ‘일몰 규정’ 삭제, 미사일 프로그램 제재에 대한 집행 강화 등 이란의 핵개발 방지를 영구화하는 쪽으로 INARA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협정의 결함을 바로잡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면 협정은 종료될 것”이라며 “대통령인 나의 결정에 따라 언제든 탈퇴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자국법 개정을 통해 이란을 압박, 재협상에 들어가 협정을 개정하겠다는 일종의 절충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협정 파기 대신 협정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조건을 제시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재협상은 없다”는 이란의 거센 반발을 부추겨 종국에는 사실상 파기 수순으로 가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일 가능성도 있다. 미 CNN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의 수’로 협정 종료 카드까지 꺼냈으나, 유럽과 러시아 중국 이란 등이 재협상에 부정적인 점을 고려하면 리스크가 크다”고 지적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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