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선가 나타났다. 최근 종영한 KBS2 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는 신인들을 주연으로 캐스팅해 내세웠다. 덕분에 여러 배우들이 안방극장의 눈도장을 찍었다. 기회였다.
여회현은 '란제리 소녀시대'에서 손진 역을 맡았다. 소개글을 그대로 옮기자면 '대구에서는 남진도 울고 갈 인기짱 완벽남'이자 '단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는 수재' '수려한 외모와 카리스마로 수많은 여고생들을 설레게 한' 인물이다.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캐릭터였지만 러브라인에 우여곡절이 있었다. '밉상'이라는 악플도 꽤 봤단다.
'란제리 소녀시대'가 한창 방송 중일 때, 마침 KBS2 '드라마 스페셜-혼자 추는 왈츠'도 전파를 탔다. 청춘의 아픔을 그려낸 단막극이었는데, 극중 여회현이 맡은 구건희 역은 열등감에 사로잡힌 청춘의 초상이었다.
'란제리 소녀시대' 손진과 '혼자 추는 왈츠'의 구건희. 그 연기의 간극을 본 후엔 실제 여회현이 궁금해졌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엘리펀 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단막극이 인상 깊었다
"감사하다. 모두 감독님 연출의 힘이다."
-취준생(취업준비생)의 아픔에 공감하기 어렵지 않았나
"사실 연기를 하다 보면 배우준비생을 제외하고는 공감 가는 역할이 잘 없지 않을까. 모든 배우들이 그렇겠지만 다 본인 만의 방법으로 캐릭터를 해석하고 노력한다. 감독님 도움도 많이 받고, 주변에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 조언을 구했다. 친구들 중에도 취업준비생이 굉장히 많고, 같이 사는 제 친누나도 취업준비생이다. 갑갑해하더라."
-누나랑 같이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원래 고향은 전라도 광주인데 어렸을 때 경기도 파주로 이사를 왔고, 10년 넘게 파주에서 살았다. 서울에서 누나랑 같이 산 건 3년 정도 됐다. 저희 남매 성격이 '서로 잘하자'다. 말도 별로 없고 서로 잘 치운다. 같이 살면서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란제리 소녀시대', '혼자 추는 왈츠' 덕에 이번 명절에 부모님이 좋아하셨겠다
"좋아하셨다. 그런데 저는 집에 쉬러 가면 일 얘기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부모님도 그걸 아시곤 구체적으로 길게 얘기하지 않으시더라. '잘 봤다' '밥은 먹고 다니냐' 정도로 마무리 하신다."
-배우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응은
"엄청 반대하셨다. 사실 전 처음에 공부하기 싫어서 연기하려고 했다. 그 때 생각엔 연기가 쉬워 보였던 거다. 부모님도 그런 제 속을 아시곤 절대 안 된다고 했다. 2년간 많이 졸랐다. 부모님이 '내가 졌다' 싶은 심정으로 연기 학원을 보내주셨는데, 연기 학원에서 정말 열심히 했다. 학원 선생님도 잘한다고 해주셨고, 부모님이 예고로 전학을 권유하셔서 전학을 가게 됐다.
막상 해 보니 연기가 정말 재밌더라. 주체 못 할 정도로 장난기가 많은 성격인데 학교에서는 혼나다가 연기 학원에서는 '연기 막 한다, 잘한다'고 칭찬을 받으니 재밌을 수밖에. 물론 '재미'는 초반까지 먹히는 얘기다. 점점 알수록 연기는 진중하게 해야 하는 게 맞고, 그 어떤 것보다 어려운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란제리 소녀시대'에서 사투리 연기, 어땠나
"으아. 제가 못 했다. 정말로, 제가 못 한 걸 인정한다. 하지만 변명을 하고 싶다. 전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게 정말 아쉬운 부분이다. 사투리 연기가 참 어렵더라. 영어로 연기하는 것보다 더 어렵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PD도 대구 출신인데 왜 배우들 사투리가 틀리냐는 지적도 있었다
"외국인 감독이라고 그 영화 배우들이 다 영어 잘하는 거 아니지 않나. 정말 어려웠다. 가슴이 아프다(웃음)."
-연기가 힘들었겠다
"시청자 분들 얘기를 듣고 사투리 연기를 더 열심히 연습해야지 했는데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사투리에만 신경을 쓰면 할 것도 못 할 것 같았다. 후반에는 사투리보다도 내가 할 것, 연기, 상황, 감정에 치중을 해서 연기하려고 했다."
-손진이 밉상이라는 댓글도 많았다
"그런 건 괜찮다. 여회현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캐릭터에 대한 얘기니까. 캐릭터에 대해 잘 봐주시고 있다는 거고, 어쨌든 관심이니까 그런 반응들은 좋았다."
-하지만 사투리에 대한 댓글이라면
"아… 그건 좀 속상했다. 열심히 했는데 안 되는데 어떡해. 저도 안 돼서 속상한데. 처음에 그런 댓글을 보고 이후로는 보지 않으려고 했다."
-반대로 좋은 댓글은 뭐가 있었을까
"좋은 말은 다 좋았다. '손진 역할이랑 잘 어울린다' '연기 잘하는 것 같다' 그런 얘기도 있었고, 또 '동문-정희보다 손진-정희가 더 끌린다'는 얘기도 은근히 좋았다."

-'란제리 소녀시대'가 첫 주연작인가
"웹드라마는 주연은 해봤지만, 사실 주연이라는 타이틀은 지상파, 비지상파를 떠나서 별로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란제리 소녀시대'는 더 영광스러운 작품과 역할이었다. 잘해야겠다는 압박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편한 사람들과 하다 보니 그런 게 사라졌다."
-첫 주연작을 하니 어떤 변화가 있었나
"작품을 할 때는 부담도 되고 욕심도 나고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났다. 노력도 당연히, 열심히 했다. 최선을 다했다. 다만 열정이 앞서서 문제가 되거나 욕심이 방해가 될 때가 있더라. 초심을 잃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열심히, 과하지 않게, 열정만 앞서지 말자고 다짐했다."
-롤모델이 있다면
"롤모델은 없지만 정말 멋있다고 생각하는 배우는 이병헌 선배님이다. 좋아하게 된 계기는 영화 '광해'였다. '달콤한 인생' 같은 역할을 주로 하셨다고 생각했는데 '광해'에서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선배님 눈을 보면 그 감정이 보이지 않나. 눈빛 연기가 멋있다.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로서 목표는 뭔가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회사원이라면 '이 회사의 회장이 될 거야' 목표를 잡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배우는 '최고의 배우'라는 게 주관적으로 각자에게 다 다르다. '남들한테 존경 받고, 이것저것 다 잘하고 인성도 좋은 그런 배우'가 되는 것도 좋은데 일단 가장 먼저 제가 행복하고 싶다. 이 직업을 하면서 제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하게 열심히 하다 보면 앞서 말한 것처럼 '남들에게 존경 받는' 배우가 되지 않을까."
강희정 기자 hjk0706@hankookilbo.com
[연예관련기사]
레아 세이두, 하비 웨인스타인 성추행 폭로 "호텔로 불러 강제 키스"
'궁금한 이야기 Y' 어금니 아빠 이영학, 천사가면 쓴 악마의 실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