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부재 속 경영진 세대교체 신호
후임 DS 책임자엔 김기남 물망
사내이사 자리는 이상훈 우세
사장단 인사 내달 초로 당겨져
삼성전자가 사상 최고의 분기 경영실적을 발표한 날, 총수가 부재한 상황에서 삼성전자를 이끌어 온 권오현 대표이사 부회장이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권 부회장의 퇴진은 ‘비상 상황이지만, 삼성전자의 변화와 혁신을 더 미룰 수 없다’는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다음달 1일 창립기념일 전후로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들에 대규모 인사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3년 만에 초대형 인사 태풍이 몰아치는 것이다.
정점 찍었을 때 퇴장하는 권오현 부회장
권 부회장은 이날 부품(DS)부문 사업책임자와 겸직 중인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직에서 동시에 자진 사퇴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직도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까지만 맡는다고 못 박았다. 권 부회장은 “급변하는 정보기술(IT) 산업의 속성을 감안하면 지금이 후배 경영진이 경영쇄신을 위해 새 출발할 때”라고 퇴진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한 차원 높은 도전과 혁신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였다. 대대적인 삼성 경영진 세대교체를 위해 용퇴를 결정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권 부회장은 서울대 전기과 졸업 뒤 카이스트와 미국 스탠퍼드대에석 각각 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공학자 출신 전문경영인이다. 1985년 미국 삼성반도체 연구소에 입사해 32년간 재직하며 삼성 반도체를 세계 1위로 끌어올렸다. 2012년 부회장으로 승진해 삼성전자 대표이사를 지냈고, 올해 상반기에만 139억8,000만원의 보수를 받는 ‘직장인 연봉왕’으로도 유명하다.
일각에선 권 부회장의 사퇴 이유 중 하나로 총수 대행의 과도한 중압감을 거론한다. 최지성 미래전략실장까지 퇴사하며 권 부회장은 그룹 내 유일한 부회장이 됐다. 여기에 삼성 임원들 사이에 암묵적인 정년으로 여겨지는 만 65세의 나이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에 이어 권 부회장의 퇴진 예고로 삼성전자 사내이사 4명 중 2명이 정상적 경영활동이 어려워진 상태다. 권 부회장이 내년 3월 사퇴하는 자리만 채울지 대폭 교체할 지가 ‘포스트 권오현’의 방향을 결정지을 키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11월 초로 앞당겨진 삼성 ‘인사 시계’
권 부회장이 당장 사퇴한 DS 사업책임자 후보 중에는 김기남 반도체총괄 사장의 이름이 맨 앞에 오르내린다. 김 사장은 2012년부터 2년간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를 지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양쪽의 전문가다. DS부문에서 출중한 경력을 쌓은 전동수 의료기기사업부장(사장), 정칠희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사장), 진교영 메모리사업부장(부사장) 등도 유력한 후보다. 다만 신임 DS부문 수장이 현재처럼 삼성전자 사내이사로 선임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이다.
등기 이사 중 권 부회장의 사퇴로 비게 될 사내이사 한 자리는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이상훈 경영지원실장(사장)이 이어받을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이 사장은 지난해 10월 이재용 부회장이 등기이사로 선임되기 전 사내이사직을 수행했고, 김종중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의 퇴사로 현재 그룹 재무분야 최고 전문가이다.
내년 3월 이사회에서 선출될 새로운 의장은 사내이사가 아닌 사외이사가 맡을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 정관을 개정해 사외이사를 의장으로 선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평소 이재용 부회장이 구글 페이스북과 같이 이사회 중심 경영을 추구해 왔기 때문에, 무죄 판결이 날 경우 이사회 의장을 맡겠지만, 불가능할 경우 전 세계적인 명망과 실력을 갖춘 전문경영인을 의장으로 임명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다음달 1일을 전후해 사장단 인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사장단 인사가 11월 말이나 12월 초 단행된 것과 비교하면 한 달 가까이 빠르다. 삼성 관계자는 “대규모 변화가 불가피해졌지만 인사 시기나 규모는 확정된 게 없다”고 밝혔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