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는 왜 꽃이어야 할까요. 뿌리나 줄기가 될 수는 없는 걸까요.”(문소리) “여배우가 아니라 그냥 ‘배우’라 불리고 싶어요.”(나카야마 미호)
한국에서도,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여배우로 산다는 건 녹록치 않은가 보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13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야외무대에서 ‘여배우, 여배우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대담을 가진 배우 문소리와 나카야마 미호는 ‘여배우도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영화적 다양성’을 소망했다.
문소리와 나카야마는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중견 배우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여성 파워를 빛내고 있다. 최근 ‘여배우는 오늘도’라는 영화로 감독 데뷔한 문소리는 여배우의 삶을 위트와 풍자를 담아 그려내 크게 호평 받았다. 연출은 물론 각본과 주연까지 담당해 숨겨진 재능을 뽐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1999)로 한국 관객에 친숙한 나카야마도 여성 감독이 연출하고 여성 캐릭터가 이야기를 이끄는 영화 ‘나비잠’을 들고 부산을 찾았다. ‘나비잠’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일본 중견 작가와 한국인 유학생 청년의 사랑을 담은 멜로영화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 배우 김재욱이 함께 호흡을 맞췄다.
-서로의 영화를 본 적이 있나.
문소리(문)=“‘러브레터’에서 ‘오겡끼데스까’를 외치던 모습을 어떻게 잊겠나. 당시 이와이 감독 영화 열풍이 불었다. 영화 속 모습이 내 마음에 아이콘처럼 남아 있다. 올해 초청작 ‘나비잠’도 봤는데, 촉촉하게 감성을 적시는 멜로였다. 가을에 잘 어울리는 영화다. 만약 설정을 한국으로 바꿔서 다시 찍는다면, 중견 작가 역할은 내가 맡으면 좋겠다고 상상도 해봤다(웃음).”
나카야마=“굉장히 좋은 생각인 것 같다(웃음). 나도 최근에 ‘여배우는 오늘도’를 봤다. 영화 속 주인공이 단지 캐릭터일 뿐인지, 문소리씨의 원래 모습인지 모르겠지만, 강인한 여성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일본 영화 안에서도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많지 않을 텐데,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마음가짐이 남다를 것 같다.
나카야마=“나이를 먹을수록 역할이 줄어든다. 시대 분위기 때문인지, 사회 시스템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이가 많아도 주인공을 연기할 수 있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많아지면 좋겠다. 나이와 함께 깊이도 더해가는 배우가 되고 있다. 한동안 휴식기를 가졌지만 나는 지금 3라운드에 선 것 같다. 꾸준히 연기하고 싶다.”
-여배우가 처한 환경이 녹록하지가 않다.
문=“‘여배우는 오늘도’를 통해 관객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공부가 됐다. 왜 이렇게 여성 캐릭터가 줄었을까. 정치적 경제적 상황 등 여러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더라. 영화는 산업이기도 하니까. 다양한 색깔을 드러내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과제가 여배우에게도 주어져 있다.”
-어떤 변화를 꿈꾸나.
나카야마=”일본에서는 여우(女優)라 표현한다. ‘빼어날 우’ 자다. 빼어난 여성이란 뜻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배우가 아니라 그냥 배우라 불리고 싶다. 여자라고 인식하고 연기하지 않는다.”
문=“여배우도 영화를 함께 만드는 구성원으로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여배우니까’라는 말에 ‘여배우가 이러면 왜 안 되냐’고 물을 수 있는 후배들도 많아졌다. 한번은 어느 시상식에서 갔는데 ‘여배우는 영화의 꽃’이라고 표현하라. 그 말이 꼭 좋게만 들리지는 않더라. 열심히 일하면서 거름이 돼야 할 때도 있고, 열매나 뿌리, 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영화계가 건강해야 한다. 건강해야 다양성이 생기고, 다양성이 확보돼야 여배우의 역할도 늘어난다. 그러면 나도, 나카야마도 웃으면서 연기할 수 있지 않을까.”
부산=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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