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말폭탄 진화 차원인 듯
美, 냉온탕식 대북 압박 지속 전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북핵 위협에 대해 군사옵션 시행을 암시하는 초강경 메시지를 이어온 가운데 최측근인 존 켈리 비서실장이 외교적 해결을 강조해 주목된다. 켈리 비서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측근이며 백악관의 사실상 이인자인 만큼 트럼프의 ‘말폭탄’이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킨다는 우려가 커지자 이를 진화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군사옵션을 후순위에 두고 외교ㆍ경제적 압박을 우선한다는 입장을 직접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미 언론들도 그동안 ‘북한의 완전 파괴’와 같은 으름장으로 일관해온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켈리 실장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함께 군사옵션은 외교적 압박이 효능을 잃을 경우를 대비한 방책으로 준비한다는 시그널을 꾸준히 보내왔다고 평가했다.
켈리 비서실장은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진행되던 브리핑 도중 예고없이 나타나 북핵 위협과 관련해 “당장은 관리가 가능하다(manageable)”라며 “북한의 무기능력이 크게 향상되기에 앞서 외교가 통하기를 기대하자”고 말했다.
자신의 퇴진설을 부인하며 입을 연 켈리 실장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능력이 탁월한 수준에 올라왔으며 핵 재진입 수단을 발달시키고 있는 만큼 “미국인들은 북한을 우려해야 한다”라면서도 “그 나라(북한)가 아직 미 본토에 도달할 (핵미사일)능력을 갖출 수 없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켈리 비서실장이 직접 백악관 공식 브리핑에서 대북 문제와 관련해 외교적 해결에 방점을 찍은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AP통신은 켈리 비서실장의 이날 발언을 소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대북 대화를 강조한 틸러슨 장관에 대해 “시간을 낭비한다”고 맞선 이후 이어진 격앙된 미국의 메시지들에 비해 매우 순화됐다고 평했다. 뉴욕타임스도 “켈리 실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매우 결이 다른 입장을 내보였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미국민의 여론마저 트럼프의 거친 입이 한반도 위기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쪽으로 기우는 등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일자 백악관이 서둘러 켈리 실장을 내세워 ‘북핵을 관리할 수 있다’는 말을 하도록 해 당장 군사옵션을 실행하지 않을 것을 시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CNN은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켈리 비서실장의 브리핑 참여를 원했고 브리핑에 흡족해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워싱턴 외교가 주변에선 아직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순화된 메시지를 드러내지 않은 만큼 군사옵션과 외교적 해법을 번갈아 강조하며 냉ㆍ온탕을 왔다 갔다 한 미국의 ‘투트랙’ 대북 압박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또한 이날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은 아랍에미리트의 대북 외교 단절 발표와 관련해 “이것이 켈리 비서실장이 말한 외교의 요체”라 말했다. 미국이 언급하는 외교적 해법이 대화와는 거리가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편 진보 성향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박정현 한국석좌는 이날 워싱턴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워싱턴에 전쟁하자는 사람은 없다”라며 “모든 일이 1%의 가능성은 있겠지만, 몇 달 내 혹은 1년 내에도 전쟁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석좌는 이어 “남한은 20만 명의 미국인이 상주하고 유럽과 중국인도 많은 국제적인 나라”이라며 “이들의 목숨을 감수하며 미국이 기습 공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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