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 적은 것”
“1심서 안씨 증언 등 참작해 인정”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 변호인단의 ‘세기의 대결’ 2라운드가 12일 시작됐다. 삼성의 승계작업과 이를 위한 부정청탁이 존재했는지 여부가 항소심에서도 최대 쟁점으로 부각된 가운데, 첫 공판에선 1심에서 승계작업 증거로 쓰인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업무수첩을 증거로 볼 수 있느냐를 두고 양측이 격돌했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 정형식) 심리로 열린 2심 첫 공판에서 이 부회장 측은 “1심은 (수첩이) 간접 사실로서 증거능력이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안 전 수석의 진술 등과 결합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유죄 판결한 것이어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수첩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을 적은 것(전문진술)이기 때문에 발언자가 그 내용을 확인해주지 않으면 증거로서는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수첩에 대해 입수과정이 적법했고, 적힌 내용이 진실돼 정황증거로서는 그 능력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삼성 측이 정유라씨 승마훈련을 지원하고, 최순실씨 소유로 알려진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영재센터)에 후원하는 등 경영권 승계 작업에 대한 묵시적인 청탁 근거로도 쓰였다.
반면 특검은 수첩이 증거물인 서면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문증거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특검은 “1심은 수첩에 기재된 내용과 안 전 수석의 증언, 관련자 진술과 객관적 사정 등을 종합해 사실관계를 인정했다”며 “전문증거라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수첩의 증거 인정 여부에 대한 양측 의견이 제시된 후에는,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인 ‘부정청탁 여부’를 놓고 신경전이 이어졌다. 1심에서 이 부회장이 영재센터를 지원한 행위(제3자 뇌물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는데, 제3자 뇌물은 공무원(박 전 대통령) 직무를 염두에 둔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사실이 반드시 증명돼야 한다.
이 부회장 측은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1심 판단 근거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변호인은 “청탁은 대상이 특정돼야 하고 대가가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인 행위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1심이 개별 현안(삼성물산 합병 등)에 대해선 명시적ㆍ묵시적 청탁이 있진 않았다고 하면서 포괄 현안(경영권 승계)이라는 용어를 끌어다가 “묵시적 청탁은 있었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도 변호인은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특검은 뇌물 공여자와 수수자 사이에 대가관계에 대한 상호 인식과 합의가 있으면 부정한 청탁이 성립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삼성이 당면한 현안의 대가로 금품을 받는다는 상호 인식이 있으면 부정청탁이 충분히 성립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날 남색 양복에 서류봉투를 들고 법정에 나타난 이 부회장은 생년월일과 주소를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또박또박 답변하며 담담한 모습이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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