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요.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 특히 그렇대요. 햇빛은 솜털처럼 닿아주느라 매일매일 분주해요. 바람이 오면 휘청휘청해요. 뾰족뾰족한 잎 가장자리에 달고 있는 가시, 활짝 피면 바늘처럼 보이는 꽃, 이맘때 맺는 열매.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은 ‘피를 잘 엉기게 해준다는 뜻’인 엉겅퀴. 가시엉겅퀴, 좁은잎엉겅퀴, 도깨비엉겅퀴, 금엉겅퀴. 친척들도 많아요. 저와 만난 적 있나요? 금엉겅퀴는 가지가 밑 부분에서 갈라지지만 저는 윗부분에서 갈라져요. 저는 은빛 꽃을 피우는 은엉겅퀴예요.
라이너 쿤체는 “독일어에서 대문자로 쓰는 명사마저 거의 소문자로 쓰는 최대한 낮은 목소리를 갖춘” 시인이지요. 특별한 인연을 맺은 전영애 선생님의 열정으로 그의 시편은 번역되었어요. “들어오셔요, 벗어놓으셔요, 당신의/슬픔을, 여기서는/침묵하셔도 좋습니다”(‘한 잔 쟈스민 차에의 초대’) 통독 이전 사람들은 자신들의 집 문에 체제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이 시를 걸어놓았다 하지요. 이런 고요하고 섬세한 시를 쓰는 라이너 쿤체는 “서정시”라는 파일명으로 분류되어 혹독한 감시를 받았지요. 그럼에도 내내 작은 시를 썼지요.
짧은 시는 작은 시이지요. 작은 시는 관찰에서 나오지요. 관찰은 내가 작아져야 가능하지요. 내가 커지면 안 보이지요. 더욱 그것들이 아주 작은 존재라면요. 작은 존재를 보는 사람을 좋아해요. 작다고 함부로 하는 어리석음을 호주머니처럼 매달고 다니지 않거든요.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느닷없이 무례를 뒤집어쓰게 하지 않거든요. 관찰이라는 딱딱한 단어를 풀면 ‘그냥 자꾸자꾸 보고 싶다’예요.
자꾸자꾸 보고 싶다는 라이너 쿤체에게 다 들켰지 뭐예요. 자꾸자꾸 보니까 자꾸자꾸 보이게 된 거예요. 사실 저는 뒤로 물러서기 자세예요. 다른 존재를 가리고 싶지 않거든요. 커지면 의도하지 않아도 가리게 되니까 땅에 몸을 대고 작아졌어요. 그러다 보니 남들의 그림자 속에 있지 뭐예요. 아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남들의 그림자 속에서도 저는 빛나고 있어요. 잎과 꽃 열매. 순간순간에 열렬하게 몰두하거든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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