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면담했다고 한다. 다음달 한중일 순방을 앞두고 조언을 얻기 위해서일 게다. 트럼프 대통령도 “엉망진창인 상태”라고 북핵 문제에 언급한 뒤 “키신저가 해줄 말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키신저 면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으로부터 대북 군사옵션을 보고받는 긴박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그만큼 키신저 구상에 트럼프 대통령이 큰 관심을 두었음을 보여준다.
키신저는 미중 간 담판에 의한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8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미중 관계”라며 “둘의 상호이해가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또 “북한이 비핵화하면 한반도가 통일되든, 2개 국가 체제로 가든 중국이 향후 북한 정치체제 변혁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앞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게는 “북한 정권 붕괴 이후의 상황에 미중이 사전 합의하면 주한미군 철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도 있었다. 세계 패권구도에서 중국의 위치를 인정하고 미중이 협력해야 한다는 지론에 맞게 북핵 문제도 미중 타협의 대상이라는 인식이다.
이런 ‘미중 빅딜설’은 미국 조야에서도 여러 번 언급됐다. 트럼프의 책사로 불렸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중국이 북한에 핵을 동결토록 하고 대가로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했고, 제이 레프코위츠 전 북한인권특사는 “하나의 한반도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키신저 구상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이나 북한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함으로써 한반도 분단을 고착화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주한미군을 근간으로 하는 한미동맹의 약화를 초래해 우리 안보에 큰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트럼프가 키신저의 조언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 들일지는 알 수 없지만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중국의 역할을 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18일 개막되는 제19차 전국대표대회가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정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중대한 정책변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첫 한중일 순방에 나서는 것은 그 직후다. 미국의 군사옵션이 강조되는 만큼 물밑의 미중 타협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음을 우리 정부가 절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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