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도피 공사대표 끝내 잡아오고
현직 차관도 부패 의혹으로 사임
높은 처벌 수위에 공직사회 꽁꽁
운전자에 돈 뜯어내는 공안 모습
이례적으로 뉴스에 동영상 공개
당 수뇌부의 강력한 경고로 해석
미국, 중국, 프랑스 등 주요 강대국들과 맞붙어 전승(全勝) 기록을 갖고 있는 베트남이지만 아직 이기지 못한 싸움이 있다. 바로 ‘부패와의 전쟁’이다. 1980년대 개혁ㆍ개방 정책으로 경제 성장이 본궤도에 오른 이후 고위층 부패가 만연하고 있지만 어떤 당 지도부도 부패 척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지난 2006년 연임에 성공한 농 득 마인(77) 전임 서기장이 당ㆍ정 공무원들에 대한 감독과 처벌 강화를 천명한 뒤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벌였을 때도 그랬다. 2006년 국제투명성기구(IT) 부패인식지수(CPI) 111위였던 베트남은 2008년 오히려 121위로 떨어졌고 이후로도 116위(2010년), 123위(2012년), 119위(2014년)에 머무는 등 부패국가 이미지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역대급 사정 태풍 부나
그렇지만 이 순위가 앞으로는 좀 달라질지 모른다. 최근 베트남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고관대작들의 비위와 비리에 대한 조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가 하면 그 결과가 현지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있다. 지난 5월 딘 라 탕(57) 정치국원 겸 호찌민시 당 서기장이 해임이 대표적이다. 그가 해임된 이유는 2009∼2011년 페트로베트남의 이사회 의장 재직 당시 회사에 끼친 손실과 비위다. 이 처벌 수위에도 베트남 국민들은 적잖게 놀라고 있다. 호찌민시에 거주하고 있는 전직 한 외교관(45)은 “사상 문제가 아닌 경제, 비리 문제로 정치국원이 해임된 일은 도이머이(쇄신) 정책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이번 부패와의 전쟁은 스케일 면에서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말했다.
여러 비위 인사 중에서도 가장 주목 받는 인물은 응우옌 쑤언 안(41) 전 다낭시 당 서기장이다. 청년신문사 출신으로 32세에 정치에 입문,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는 등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하지만 최근 그가 다낭시가 소유한 부동산을 공고 없이 수의계약 형태로 넘겨 손실을 입히는가 하면 기업으로부터 13억동(약 6,500만원) 상당의 차량(도요타 아발론)을 무상으로 제공받은 사실, 기업이 제공한 고급 주택에서 거주한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그는 이런 의혹들을 처음에는 강하게 부정했지만, 모두 사실로 드러나면서 공분을 샀다.
지방성까지 전방위 조사
이번 부패와의 전쟁은 당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 지방성, 국회의원, 금융권, 공기업 등 각 분야의 인사들을 총망라한 게 특징이다. 앞서 지난 8월에는 호 티 낌 토아(57) 산업무역부 차관이 비위 의혹으로 해임됐는데, 현직의 퇴진은 매우 이례적이어서 공직 사회가 꽁꽁 얼어붙기도 했다. 국영 전자업체인 디엔 꽝 램프 대표로 재직 당시 회사가 민영화하는 과정에 부당한 방법으로 주식을 취득한 혐의다.
또 국영 석유가스공사(페트로베트남)의 자회사 대표로 있으면서 손실을 끼친 혐의로 수배를 받던 중 독일로 도피했던 찐 쑤언 타인(51) 전 페트로베트남건설 회장은 약 1년간의 수배 끝에 현지서 체포돼 7월 말 베트남으로 끌려오기도 했다. 그는 남부 하우장성 국회의원까지 지낸 인물인데 당국이 이를 ‘시범 케이스’로, 비리 공직자는 끝까지 쫓아가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부패와의 전쟁을 이끌고 있는 총사령관은 국가 서열 1위인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 그는 지난 7월 말 열린 반(反)부패 중앙위원회 회의에 참석, “화로가 이제 달아올랐다. 젖은 장작도 다 태울 수 있다”고 발언하며 강력한 반부패 메시지를 전했다. 부정부패 근절을 바라는 여론이 비등한 만큼 부패 척결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호찌민시 인문사회과학대 한 재학생은 “그 말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고 있다. 친구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목적은 정권 안정?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이번 사정 바람의 배경으로는 ▦정치적 파워게임(막후투쟁) ▦정권안정을 위한 포석 등으로 엇갈린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난달 9일 뉴스에서 한 동영상이 보도돼 큰 방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6월 호찌민시 떤션녓 공항 앞 도로에서 공안 3명이 오토바이, 자동차 운전자들로부터 현금을 받아 챙기는 모습을 멀리서 촬영한 동영상이다.
이 동영상을 본 까오 퐁씨는 “모두가 당해 본 일이고,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 무슨 뉴스냐”라며 비꼬았고, 응옥 뚜씨는 “시민들은 매일 보는 장면인데 이상하게 감찰관들만 모르는 장면”이라고 비판했다. 레 하 안씨는 “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가다 공안에 걸릴 때면 더욱 화가 난다”며 “아이들은 공안들이 무엇을 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여느 때 같았으면 보도가 안됐을 내용”이라며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모든 언론 매체가 당의 감독ㆍ통제 하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보도는 베트남 권력 지도부가 대민 접촉 최일선에 있는 공안에게 공개적인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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