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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에 정당방위 인정, 25년 만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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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에 정당방위 인정, 25년 만에 나왔다

입력
2017.10.1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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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신부 죽인 군인 살해한 30대

휴가나온 상병 술취해 주택가 침입

자고 있던 예비신부 흉기로 살해

비명에 깬 남성 격투 끝 상병 살인

檢, 2년 장고 끝 불기소처분

“사람 죽였지만 위법성 없다” 결론

“정당방위 요건 지나치게 엄격…

국민 법정서 변화 반영된 결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015년 9월 새벽, 강원 지역 육군 A부대 장모(당시 20) 상병은 9박10일 정기휴가를 맞아 상경, 친구들과 만나 소주 3병 가량을 마시고 거나하게 취했다. 귀갓길, 친가가 있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 주택가를 기웃대던 장 상병은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생면부지 양모(당시 36)씨 집에 침입해 방에서 자고 있던 양씨 예비신부 박모(33)씨를 주방에 있던 흉기로 살해했다.

건넛방에서 잠을 자다 비명에 깬 양씨는 장 상병과 맞닥뜨렸다. 격렬한 몸싸움 끝에 양씨는 흉기를 빼앗아 장 상병 등과 목 등을 수 차례 찔러 숨지게 했다. 장 상병의 범행 동기 등을 둘러싼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양씨 대응을 두고 ‘정당방위냐, 과잉방어냐’ 논란도 불거졌다.

당시 서울 노원경찰서는 정당방위를 판단하는 내부 수사지침(‘침해행위에 대해 방어하기 위한 행위일 것’) 등을 근거로 ‘정당방위에 의한 살인’이라 최종 결론, 그 해 12월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수사기관이 살인 피의자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한 건 1990년 자신을 묶어두고 애인을 눈 앞에서 성폭행하는 사람을 격투 끝에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남성 사건 이후 25년 만이었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북부지검은 양씨에 대해 ‘죄가 안 됨’ 결론을 내리고 불기소 처분했다고 11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사람을 죽인 것은 맞지만 위법성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정당방위를 인정했다. 최종 결론에 무려 2년이 걸린 셈이다.

장고를 거듭했던 검찰은 “합리적 결론에 도달하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예비신부와 군인이 아는 사이였다’ 등 사건 당시 온갖 추측이 돌아 담당 부장검사는 피해 여성 유족과 장 상병 유족을 모두 만나 면담을 진행했다. 검찰청 의료자문위원회에 조언도 구했다. 지난달엔 검찰시민위원회를 열었다. 23명 전원이 모인 위원회에선 불기소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뿐 아니라 외국 사례를 충분히 검토했고 국민 법 정서가 변화한 것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검찰 스스로 “살인을 법률적으로 처벌하지 않는 건 극히 이례적”이라고 밝힐 정도로 우리나라는 정당방위 인정에 매우 인색했다. 형법 제21조는 정당방위를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라 정의하고 있으나, “그 기준과 범위가 매우 모호할 뿐 아니라 수사기관이 정당방위 요건을 엄격하고 까다롭게 적용해온 관행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 풀이다. 실제 2014년 집에 침입한 절도범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빨래 건조대 등으로 수 차례 폭행, 뇌사상태에 빠뜨린 A(당시 21)씨는 “정당방위라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에 따라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은 바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건은 최초에 위법을 저지른 사람(장 상병)이 사망한 상태에서 정당방위를 인정한 획기적인 결정”이라며 “정당방위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엄격해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상당 부분 반영한 결과로 유사 사건에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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