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스터ㆍ한우 등 재료 구매한 뒤
조리비만 내면 즉석 요리해 줘
“설거지도 필요 없어 가성비 갑”
맞벌이 주부들에 반응 폭발적
서울 서초동에 거주하는 워킹맘 김지영(43)씨는 요즘 매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걸어서 15분 거리인 롯데마트 서초점에 간다. 평일에는 주로 ‘사러’ 가지만, 주말에는 대부분 ‘먹으러’ 가는 게 차이점이다. 다른 매장과 달리 이 곳에서는 한우나 수입산 쇠고기, 고급요리로 통하는 랍스터(바닷가재)나 대게 등을 구매한 뒤 조리비(1,500원)만 내면 즉석에서 요리를 해줘 바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장에서 만난 지난달 16일에도 김씨는 평소처럼 대형 수조 속에서 꿈틀거리는 싱싱한 랍스터(미국산)를 집게로 꺼내 요리사에게 건넨 뒤 20분만에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받아왔다. 100g당 6,000원인 한우(설도) 2인분(400g)도 10분만에 육즙이 흥건한 스테이크로 나왔다.
그는 “한우 2인분을 먹어도 조리비 포함 3만원도 안 돼 호주ㆍ미국 등 수입 쇠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를 파는 일반 레스토랑의 절반 가격인데다 랍스터도 1마리에 1만5,000원대에 불과하다"며 "집에서 먹을 때처럼 내가 요리하지 않아도 되고, 설거지도 할 필요도 없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편리함을 동시에 갖췄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주부는 ‘하루 세끼 어떤 요리(반찬)를 만들어 가족과 밥을 먹어야 하나’ 매일 고민한다. 직장생활과 가사를 병행하는 주부들이라면 그 부담은 더욱 크다. 오죽하면 주부들이 가장 먹고 싶은 밥은 ‘남이 해준 밥’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온라인쇼핑객이 늘면서 위기를 맞고 있는 대형마트가 이 같은 주부의 마음을 읽어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그로서란트(grocerant)’ 마켓을 전면에 내세우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그로서란트는 그로서리(groceryㆍ식재료)와 레스토랑(restaurantㆍ음식점)이 합쳐진 말로, 고객이 식재료 구입(장보기)과 요리(식사)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복합공간을 뜻한다.
그로서란트에 가장 공을 들이는 곳은 롯데마트다. 롯데마트는 지난 4월 개점한 서울 양평점에, 간단한 양념이 얹혀져 팩으로 포장된 쇠고기를 구워주는 ‘스테이크 스테이션’을 선보여 호응이 좋자 지난 7월 문을 연 서울 서초점에선 아예 그로서란트를 전면에 내세웠다. 스테이크 스테이션 외에도 랍스터, 새우, 연어, 장어 등 집에서 조리하기 까다로운 수산물을 취향에 따라 찜이나 구이 등의 요리로 즉시 맛 볼 수 있도록 한 ‘시푸드 스테이션’, 오렌지, 자몽, 코코넛 등 신선한 과일을 그 자리에서 착즙해 주스로 만들어 주는 ‘주스 스테이션’, 샐러드용 야채, 토핑과 소스를 직접 선택해 나만의 샐러드를 만들어주는 ‘샐러드 스테이션’을 추가로 선보인 것이다.
지난달 문을 연 롯데마트 ‘김포한강점’은 최근 건강식으로 인기가 높아진 수입과일 아보카드를 소스로 만들어 주는 등 최신 트렌드에 맞춰 메뉴와 조리법을 다양화했다.
이마트도 스타필드하남과 스타필드고양에서 운영하는 프리미엄 식품 매장인 ‘PK마켓’에서 고객이 구매한 식재료를 조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스테이크를 구워 먹는 공간 ‘부처스테이블(Butcher’s Table)’을 스타필드하남에서 선보여 인기를 얻자 8월 개점한 스타필드고양에서는 그 공간을 2배로 확대하고, 랍스터나 조개, 장어 등을 조리해 먹는 ‘라이브 랍스터 바’를 새로 선보였다. 400~500g인 랍스터를 그릴에 구워 홍합 및 감자튀김 등과 같이 곁들인 ‘랍스터 그릴 플래터’(3만8,000원)가 대표 메뉴다.
고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롯데마트 서초점의 경우 조리 주문 건수가 축산과 수산은 평일 각각 150건씩, 주말에는 약 200건씩 몰리고, 주스 주문은 하루 평균 300건 이상일 정도다. 주문이 밀릴 때는 30분 이상 걸려 구매한 식재료를 맡겨 놓고 장을 보는 고객도 많다. 주 고객인 주부들은 이구동성으로 “랍스터와 킹크랩(대게)을 집에서 요리해 먹으려면 손질해야 하고, 찜기, 채반 등이 필요한 데 여기에서는 내가 요리하지 않아도 되고 뒤처리도 편리하다”고 말한다. 황병권 롯데마트 서초점 수산실장은 “조리된 음식을 포장해 갈 수도 있지만, 구매 고객 90% 이상이 매장에서 먹고 간다”고 말했다.
대형마트들이 그로서란트를 도입하는 이유는 온라인 시장과의 경쟁 때문이다. 차별화한 경험을 제공해 고객을 끌어 모으고, 체류시간을 늘려 매출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그로서란트를 담당하고 있는 김형주 롯데마트 과장은 “대형마트의 강점인 신선식품을 맛 본 고객이 맛있으면 재구매율이 높아진다”며 “실제로 서초점은 1일 평균 8,300여 명의 고객이 찾아 롯데마트 전점(120개 점포)의 일 평균 고객 수와 비교해 두 배(84.3%) 가까이 많은 데다 신선식품 매출 비중이 다른 매장에 비해 거의 1.5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
최근 햄버거병, 살충제 계란 파동 등 식품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고객의 발길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 그로서란트는 내가 먹을 음식의 식재료를 직접 고르고, 조리되는 과정도 볼 수 있어서 일반 식당이나 가공식품 보다는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로서란트가 반짝 인기에 그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마트에 이미 일반화된 푸드코트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갤러리아백화점은 2012년 압구정동 본점에 국내 최초로 그로서란트 서비스를 선보였다가 수요가 적어 1년 만에 서비스를 중단한 전례가 있다.
인근 음식점의 반발도 있다. 한 식당 주인은 “마트가 조리도 해주면서 상인들의 위기감이 더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그로서란트 도입 초기 주요 고객은 30, 40대 젊은 층인데 다양한 연령을 아우를 수 있는 메뉴나 서비스를 보완해야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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