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철 “업무 증가 피하려는 의도 의심”
7억여원 들여 개선하고도 여전히 부실
통역ㆍ송금 돕는 영사콜센터 번호만 안내
부실 응대에 전화 불통까지… 파행 운영
올 1월 친구 2명과 함께 대만 여행을 떠났던 여대생 A씨는 고민 끝에 현지에서 주(駐)타이베이한국대표부 긴급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동행한 친구들을 성폭행한 현지 택시 운전기사를 경찰에 신고하기로 결심한 뒤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통화가 됐지만 응대는 시큰둥했다. A씨는 “당직자가 한숨을 쉬며 ‘무슨 일로 긴급전화를 했냐. 지금 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라고 짜증 섞인 투로 말하더니 ‘경찰에 신고부터 하고 연락 달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면서 “경찰 신고와 증언 과정에서 외교부 대신 현지 교민들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위급에 처한 국민이 이용하는 재외공관 긴급전화 서비스가 파행 운영되고 있다. 연 2,200만명이 해외 여행을 가고 이에 따라 해외 사건ㆍ사고 피해가 급증하는 상황에서다.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현재 우리 국민이 외국에 나갈 때 발송되는 국가별 로밍(통신업체끼리 서로의 통신망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는 일) 문자 서비스에 재외공관 긴급연락처는 빠져 있다. 대신 ‘해외 위급 상황 시 영사콜센터에서 필요한 안내를 받으라’며 영사콜센터 대표번호를 안내하고 있는데, 이 센터는 통역 서비스와 신속 해외 송금 지원이 주 업무여서 사건ㆍ사고 응급 대응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원 의원 지적이다.
올 들어 외교부가 해외안전지킴이센터 준비에 착수한 것은 기존 영사콜센터 기능이 민원 상담 위주여서 신속한 해외 사건ㆍ사고 초기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가령 지갑을 잃어버렸을 경우 해외 여행객이 영사콜센터에 전화하면 분실 신고를 하는 데 통역 서비스를 이용하고 신속 해외 송금 지원 서비스를 활용해 당장 필요한 돈을 한국 지인에게서 빌려 쓸 수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 감금이나 납치, 폭행 등 피해를 당했을 때 영사콜센터의 도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긴급 구조는 재외공관 긴급연락처로 연결되는 사건ㆍ사고 담당 영사나 보조 인력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원 의원 설명이다.
안내에만 소극적인 게 아니다.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원유철 의원실이 지난달 이틀에 걸쳐 외교부 해외여행안전 어플리케이션(앱)에 긴급연락처가 등록된 172개 재외공관을 전수 조사한 결과 58곳이 전화를 안 받았고 48곳은 아예 회신조차 없었다. 전체 공관 10곳 중 3곳 꼴로 긴급전화가 먹통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해외 관광객이 늘면서 해외 사건ㆍ사고 피해자 규모도 가파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교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에서 살인ㆍ강도ㆍ절도ㆍ강간ㆍ폭행이나 교통사고 등 사건ㆍ사고를 당한 피해자 수는 9,290명으로 1만명에 육박했다. 4,967명이었던 2013년과 비교할 때 4년 새 87%나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재외공관 민원 처리량도 늘었다. 같은 기간 38만2,970건에서 50만3,023건으로 31% 많아졌다. 때문에 외교부가 고의로 재외공관 긴급연락처를 적극 홍보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원 의원은 “2015년 외교부가 국가별 로밍 문자 서비스 개선 사업에 7억6,000만원이나 투입하고도 정작 긴급연락처를 누락시킨 게 업무 부담 증가를 우려해서가 아닌지 의심된다”며 “부실 응대와 전화 불통, 소극적 홍보 등을 아우르는 긴급연락 서비스의 총체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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