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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심야 식탁] 우리집 명절 음식요? 큰아버지의 내장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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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심야 식탁] 우리집 명절 음식요? 큰아버지의 내장탕!

입력
2017.10.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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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내장에다 초리쵸와 피순대에 병아리콩을 넣고 뭉근하게 끓인 스페인 마드리드식 내장탕. 큰아버지의 내장탕을 떠올리며 종종 사 먹었다. 천운영 작가 제공
각종 내장에다 초리쵸와 피순대에 병아리콩을 넣고 뭉근하게 끓인 스페인 마드리드식 내장탕. 큰아버지의 내장탕을 떠올리며 종종 사 먹었다. 천운영 작가 제공

명절이면 한나절 꼬박 전을 부친다. 반죽하고 성형하고 밀가루 계란 묻혀 지지고 뒤집고. 시장 전집처럼 파트를 나눠 너댓 명이 거실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임무를 수행한다. 커다란 채반으로 겹겹이 한 가득. 요즘엔 한 접시 두 접시 사다 올리기도 한다는데, 웬 전을 그렇게나 많이 하나 싶지만, 다른 건 몰라도 전 만큼은 넉넉하게 부쳐야 한다는 게 우리의 원칙. 차례상에 놓을 전의 높이를 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기름 냄새를 풍겨야 뭔가 잔치 냄새가 나고, 머리를 맞대고 앉아야 사람 모인 맛이 나는 법이니. 간 본다고 한 점, 맛 보라고 두 점, 일단 차례상에 올릴 만큼만 완성된 다음엔, 아이고 기름 냄새 울렁거린다, 맥주나 한 병 따라,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큰아버지도 한 잔 조카 녀석도 한 잔, 그렇게 부치며 마시며 명절 분위기를 낸다. 그리고 남은 전은 식구 수 대로 나눠 싸준다. 그러다 보니 전 종류도 식구들 취향에 맞춘 전만 부친다.

생전의 할머니는 삼겹살 전을 좋아하셨다. 소고기 육전도 아니고 돼지 삼겹살로 전을? 할머니가 좋아하셨으니 전 목록 일 순위. 남자들은 조개전을 좋아한다. 맛이 진하고 술안주로 딱이니 이 순위. 고모네들은 방앗잎을 듬뿍 넣은 풋전을 좋아한다. 엄마가 키운 방앗잎을 싹 다 뜯어와 되직하게 반죽해서 부친다. 풋풋한 방아 냄새가 입맛을 돋운다. 아이들은 새우전을 좋아한다. 이번엔 왕새우로 한 마리씩 큼직하게. 부치기가 무섭게 사라진다. 동태전은 모두들 싫어해서 패스, 호박전이니 두부전이니 동그랑땡이니 꼬치산적이니 일반적으로 많이 하는 전들도 패스. 누가 뭐래든 이것이 우리 집 차례상 준비의 원칙.

맛있는 것들이 차고 넘치는 요즘 세상에, 명절 음식이 뭐 대단하냐 싶지만, 기대되는 음식이 몇 있다. 다 같이 모여 앉아 부쳐 먹는 전이 그렇고, 큰아버지의 내장탕이 그렇다. 우리는 추석 때 자주 내장탕을 끓인다. 어릴 적엔 다 그러는 줄 알았다. 토란을 넣은 토란탕국이나 홍합 등 말린 해산물을 넣은 탕국을 차례상에 올리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추석에 내장탕을 먹는다고? 그 시뻘건 내장탕을? 아니. 양념 덕지덕지 넣은 시뻘건 내장탕이 아니라, 무만 넣고 말갛게 끓인 내장탕이라니까. 추석 때 내장탕 안 먹어? 나야말로 놀랐다. 추석 때만 먹을 수 있는 게 내장탕이라고 생각했는데.

명절 대목엔 소를 많이 잡으니 부속물도 많이 나온다. 이만큼 신선한 내장을 살 수 있는 시기가 또 없다. 한우니 암소니 가격이 올라도 내장 가격은 오히려 더 착해진다. 아무리 신선해도 내장에서는 내장 냄새가 나는 법. 밀가루 넣고 바락바락 씻어 말갛게 만드는 데에는 반드시 큰아버지의 힘이 필요하다. 검은 타월을 흰 타월로 만드는 위 손질법도 큰아버지의 기술. 위는 부드럽게 양은 쫄깃하게 적당한 식감으로 삶아내는 것도 큰아버지의 연륜. 물론 이 또한 탕을 끓이기 전에 썰어 소주 한 잔씩 돌리며 맛을 보는 게 우리의 원칙. 때때로 간 천엽이 따라 나올 때도 있는데, 자칫 대낮의 술자리가 좀 길어진다는 단점 아닌 단점이 있기도 하다.

쿠엥카의 곱창구이. 나무 꼬챙이에 곱창을 8자로 겹겹이 꼬아 오븐에 굽는다. 마늘 파슬리 소스와 곁들여 먹는다. 천운영 작가 제공
쿠엥카의 곱창구이. 나무 꼬챙이에 곱창을 8자로 겹겹이 꼬아 오븐에 굽는다. 마늘 파슬리 소스와 곁들여 먹는다. 천운영 작가 제공

고모들은 아버지의 말린 생선을 기다린다. 고향으로 내려간 아버지는 명절 즈음이면 법성포니 줄포니 격포니 항구를 다니며 생선을 사다 말린다. 어찌나 꼼꼼하게 지키고 서서 관리를 하는지 냄새 하나 없이 꼬들꼬들하게 참 맛있다. 서대나 장대일 때도 있고, 홍어나 가오리 일 때도 있다. 이 모든 건 생전의 할머니가 좋아하던 생선, 고모들이 환장하는 생선. 고모들은 생전의 할머니가 그랬듯 열 손가락 비린내를 묻혀가며 말린 홍어를 짝짝 찢어 입에 넣는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머니가 살아 돌아온 것 같다 흉을 보면서. 그렇게 할머니는 모두 함께 준비한 음식 냄새 속에서 모두와 함께 놀다 가신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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