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 라인 등 불분명해 고충 겪어
백악관 대신 의회ㆍ주지사에 힘 쏟기도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 여기기 힘들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 여기는 데 필요한 ‘학습 곡선’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지난 1월 말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를 9개월 가까이 지켜본 미국의 동맹국 외교관들이 내린 결론이다. 이들이 목도한 것은 의사결정 라인이 불분명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한마디가 정책이 되며, 힘들게 이뤄낸 국제 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모습뿐이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유럽과 중남미, 아시아 등 12개국 안팎의 고위급 외교관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9일(현지시간) 이 같이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최근 몇 주에 걸쳐 이뤄진 인터뷰에선 놀라울 만큼 일치된 목소리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 및 그의 행정부를 상대한 경험과 관련, 낙관론에서 출발해 경보음이 뒤따랐고 결국엔 상황 호전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밖에 없었던 ‘회오리 같은 여정(whirlwind journey)’이라고 묘사한 것이다. 이러한 좌절과 두려움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말 폭탄’을 주고받으면서 더욱 짙어졌다고 WP는 전했다.
외교가의 풍경도 바뀌었다. 자국 정책ㆍ정치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외교관들은 새 정부 출범 땐 정보교류 차원에서 조언과 가십을 주고받기도 하는데, 취임 10개월째인 지금도 이 같은 ‘비공식 루트’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한 외교관은 “우리는 항상 서로에게 ‘미 정부의 누구와 거래하나’, ‘어려운 상황은 어떻게 처리하나’라고 묻는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 트럼프를 봤다고 하면 ‘무엇을 봤나’ ‘이방카는 있었나’ 등 질문을 쏟아낸다”면서 ‘크렘리놀로지’(Kremlinologyㆍ구 소련학)에 비유하기도 했다.
긍정적 평가가 없었던 건 아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아프가니스탄, 헝가리 등의 외교관들은 후한 점수를 줬다고 한다. WP는 “그러나 대다수 인터뷰 대상자들은 훨씬 더 비판적이었고 익명으로만 솔직히 말했다”면서 미 행정부 내 권력서열, 의사결정 과정 등을 파악하는 데 고충을 겪는다고 했다. “우리는 아직도 행정부 내 균형이나 책임 소재에 대해 잘 모른다.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우리는 추측만 할 뿐”이라는 다른 외교관의 언급이 대표적이다.
특히 상당수는 미 정부 관료들로부터 ‘트럼프의 트윗이나 외교적 언급은 무시하라’는 조언을 들었다고도 답했다. 백악관 대신 의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했다거나, 기후변화나 무역 등의 사안에선 워싱턴 대신 주지사와 직거래를 한다는 외교관들도 있었다. 신문은 “처음에는 트럼프가 매력적이었지만, 수개월 후 워싱턴에서 난처한 소음이 들렸고 이는 곧 배경음이 됐다. 미국은 이전보다 덜 중요해졌다”는 또 다른 외교관의 언급을 전하면서 외국 외교관들에게 트럼프의 백악관은 ‘골치 아픈 불가사의’라고 지적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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