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3만 명에 국토의 80%가 얼음과 화산으로 뒤덮인 나라, 아이슬란드가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 진출했다.
아이슬란드는 10일(이하 한국시간) 수도 레이카비크에서 열린 코소보와의 2018 러시아월드컵 유럽예선 I조 마지막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다. 7승1무2패로 승점 22점이 된 아이슬란드는 크로아티아, 우크라이나, 터키 등 강호들을 누르고 당당히 조1위를 차지, 월드컵 본선에 직행했다.
‘기적’을 만든 팀 구성원 면면은 개성이 넘친다. 대표팀을 이끄는 헤이미르 할그림손(49)감독의 본업은 치과의사다. 그는 취미 삼아 아마추어 축구선수 생활을 병행하다 국가대표 감독 자리까지 올랐다. 골키퍼 하네스 할도르손(32)은 영화감독 출신으로, 뮤직비디오 제작에 전념하기 위해 5년 전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또 다른 골키퍼 외그문두르 크리스틴손(28)은 법학사 학위까지 받은 법학도로, 최근 인터뷰에서 대표팀 은퇴 뒤 변호사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특이한 이력을 가진 선수들이 많은 까닭은 생활 체육을 기반으로 선수생활을 택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승리로 역대 월드컵 진출국 중 가장 적은 인구수 기록을 갈아치운 아이슬란드는 인구 약 33만 5,000여명으로 서울 도봉구 보다 적다. 이름값에 걸맞게 국토의 80% 이상이 빙하와 용암지대로 이뤄져 있어 축구와 같은 야외 스포츠가 발달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1년 중 8개월 이상이 야외 활동을 하기 힘들만큼 추워서 자국에 축구리그조차 없다.
아이슬란드가 최악의 조건을 극복하고 월드컵 본선 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 차원에서 주도한 사회 복지 시스템이 한 몫 했다는 분석이다 아이슬란드 리뷰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1990년대 아이슬란드는 청소년 약물 남용과 흡연율, 알코올 중독 등의 문제로 신음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정부는 1998년 국가 차원의 사회 복지 사업을 펼쳤다. 마을마다 체육관을 짓고 학교와 각 가정에는 스포츠 활동 지원책을 마련해 일탈을 줄여나갔다. 그 결과 청소년 비행은 줄어들었고 대신 청소년 스포츠 인구가 대폭 늘었다.
정부는 혹독한 추위로 1년 중 8개월은 바깥에서 축구경기가 어려운 환경을 감안, 정식 규격의 실내 축구장을 적극 건립했다. 어린 시절부터 실내 축구장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이들 세대에는 ‘인도어 키즈’라는 별칭이 붙었다. 길피 시구르드손(28ㆍ에버턴) 등 현재 아이슬란드 대표팀의 주축을 이루는 1990년대 생은 이런 복지 정책의 결실이다.
아이슬란드의 경제 상황도 국제무대 성적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아이슬란드 리뷰는 “실업률이 크게 떨어지면서 엘리트 스포츠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뒤에도 직업을 다시 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며 “인구가 적은 아이슬란드에서 엘리트 스포츠가 활성화하고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국가가 주도한 사회 시스템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30ㆍ바르셀로나)가 속한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남미 예선 탈락 위기에 직면했다. 아르헨티나는 11일 펼쳐질 남미 예선 최종전을 남겨둔 가운데 10팀 가운데 6위를 기록 중이다. 상위 4팀이 본선에 직행하고 5위는 플레이오프를 거치는 남미 예선에서 아르헨티나는 최종 에콰도르 전에서 패하면 월드컵 탈락이 확정되고, 비기면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한다. 마지막 경기는 원정인 데다 경기가 열리는 에콰도르 수도는 고지대여서 아르헨티나에게는 불리한 상황이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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