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이 50건을 넘어섰다. 2004년 서울 남부지법 이정렬 판사의 첫 무죄판결 이후 점차 늘어나더니 올해 절반이 넘는 35건이 집중됐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 88조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공감대가 판사들 사이에서 넓어졌음을 보여 준다.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 하지 말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 권고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대체복무제 도입 찬반 문제로 연결된다. 반대론자들은 병역기피자 급증과 국방 의무에 대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 보장과 강도 높은 대체복무가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국방부가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발표한 대체복무안과 현 20대 국회에 제출된 3건의 관련법안이 그 근거다. 현역의 두 배에 해당하는 복무기간과 합숙생활, 소록도 같은 도서지역 복지시설 근무 등의 내용이다. 양심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국방 의무를 이행하는 합리적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곳은 국회와 대법원, 헌법재판소다. 국회 입법을 통한 대체복무제 도입이 바람직하지만 여론이 엇갈린 상황에서 국회가 총대를 메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최근 움직임이 주목되는 곳은 대법원이다. 소수자 인권보호에 힘써 온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을 계기로 보수적인 대법원의 체질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하급심 무죄 선고가 잇따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혼란을 종식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김 대법원장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 마련을 전제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청문회에서 답했다.
▦ 10일 청와대의 김이수 헌재 소장 권한대행 체제 유지 결정으로 주요 사건 심리가 재개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1순위로 꼽힌다. 병역법 조항의 위헌성 판단 요청이 28건이나 쌓였지만 헌재는 6년째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모든 심리가 끝났으나 탄핵심판으로 선고가 미뤄진 만큼 조속히 결론을 내려야 한다. 해마다 600명이 감옥에 가는 집단적인 인권문제를 언제까지 국회와 사법부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셈인가.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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