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코스비와 빌 오라일리에 이어 하비 웨인스타인까지 미국 방송계 거물들이 수십년간 저질러온 성폭력 추문으로 잇따라 물러났다. 이들의 성폭력 행각은 관련업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만큼 널리 알려진 일이었으나 이들의 막강한 ‘연예 권력’ 때문에 피해자들이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었다.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제작자인 웨인스타인은 지난 9일 수십년간 여배우와 여직원들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났다. 웨인스타인은 미라맥스, 웨인스타인컴퍼니 등 영화제작사를 설립해 다수의 아카데미 수상작들을 제작한 할리우드의 실력자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도 웨인스타인컴퍼니가 북미 지역의 배급을 맡았다.
지난 5일 추문을 보도한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웨인스타인이 영화배우 애슐리 저드와 여직원들을 30년 가까이 성추행했다고 폭로했다. 보도에 따르면 웨인스타인은 1979년 설립한 영화제작사 미라맥스 시절부터 성추행을 일삼았고 피해 여성들과 최소 8차례 법적으로 합의했다. 피해여성들은 웨인스타인이 거의 나체 상태로 나타나 마사지를 해달라거나 샤워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기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보도 후 웨인스타인은 성명을 통해 해당 내용을 인정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웨인스타인컴퍼니 이사회는 “웨인스타인의 고용을 즉시 종료하고 이를 통보했다”고 발표했다.
애슐리 저드는 2015년 연예전문매체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1997년 영화계 거물급 인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으나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로즈 맥고완도 지난해 10월 트위터에 ‘1997년에 할리우드 유력 인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으나 변호사로부터 소송에서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글을 올렸다. 해당 인물은 모두 웨인스타인이었다.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였던 빌 오라일리는 지난 4월 뉴욕타임스의 성추문 보도 여파로 폭스뉴스에서 퇴출됐다. 1996년 폭스뉴스에 입사해 ‘오라일리 팩터’를 진행한 오라일리는 올해 초 평균 시청자 수 398만명을 거느리며 ‘미국 케이블 뉴스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보도에 따르면 오라일리는 폭스뉴스 직원들에게 성희롱 등 부적절한 행동을 했고 2002년부터 피해여성 5명에게 침묵을 지키는 대가로 총 1,300만달러(약 148억원)를 지불했다. 그는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으나 50여개 광고주들의 광고철회, 여성단체들의 퇴출 요구 등이 빗발치자 결국 폭스뉴스를 떠났다.
미국의 유명한 원로 코미디언 빌 코스비도 40여년간 수십명의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성추문이 터지면서 재판을 받고 있다. 2014년 말부터 수십명의 여성들이 코스비가 준 술과 약물을 먹고 의식불명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증언을 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욕매거진은 2015년 7월에 코스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 46명 중 35명의 얼굴 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이 가운데 일부 피해 여성들은 공소시효가 남아있어 재판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미국 연예산업 거물들의 권력을 이용한 성추문이 잇따라 터지면서 이를 규탄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여배우 메릴 스트립은 10일 웨인스타인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권력 남용”이라며 “이에 대한 목소리들이 모이면 판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 ‘헐크’의 주연배우 마크 러팔로도 트위터를 통해 “웨인스타인이 권력을 이용해 저지른 역겨운 행동에 대해 명백히 알아야 한다”면서 “성추문들을 끝내기 위한 움직임이 개시됐다”고 주장했다.
웨인스타인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은 배우 로즈 맥고완도 언론 인터뷰에서 “할리우드의 남성들은 가능한 빨리 변할 필요가 있다”며 “사회가 변화하고 성장하기 때문에 할리우드의 권력은 기울어가고 있으나 할리우드 남성들의 행동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