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석조전 등 35개 시설 개방
밤 10시까지 공연·전시 펼쳐
가을 정취 물씬… 사전예약 필수
서울광장을 가운데 두고 덕수궁과 마주보는 자리, 조선 왕실 건축 양식의 문이 하나 있다. 화려하고 높은 현대식 건물 틈에 위치한 이곳은 맞은편 덕수궁만큼이나 유서 깊은 장소인 ‘환구단’의 입구다. 고종황제는 이 환구단에서 1897년 즉위식을 올리고 국호를 ‘대한’으로 선포했다. 대한제국이 세계 열강과 대등한 자주 독립 국가임을 알린 역사적인 장소지만 일제가 환구단을 허물고 철도호텔을 지으면서 현재는 신위판을 보관하던 황궁우와 당시 조각된 석고(石敲)만 남아 있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10일 “서울시에 환구단 복원을 제의했지만 쉽지 않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다른 방법으로라도 시민들에게 그 역사적인 가치를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청이 13, 14일 열리는 역사문화축제 ‘정동야행(貞洞夜行)’ 개막을 앞두고 취재진에게 일부 장소를 공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는 특별히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10월 12일)을 기념해 ‘대한제국을 품고 정동을 누비다’를 메인 테마로 내걸었다. 환구단처럼 대한제국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코스를 발굴하는데 중점을 뒀다.
환구단은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덕수궁과 마주볼 정도로 그 위상이 높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그 입지도 좁아졌다. 환구단 정문의 역사는 더 기구하다. 정면 3칸짜리 이 문은 조선호텔을 재건축하면서 행방이 묘연했다가, 2007년 강북구 우이동 그린파크호텔에서 쓰고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해 이 장소로 이전 복원했다.
정동야행에 참가하면 문화해설사를 통해 관련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13일 오후 8시 환구단 옆 조선호텔에서 ‘대한제국의 유산’이란 제목으로 특강도 한다.
1년여의 리모델링을 마치고 최근 재개장한 덕수궁 ‘중명전’도 눈 여겨 볼 만하다. 중명전은 고종황제가 업무를 보던 곳이자 을사늑약을 체결한 비운의 장소다. 1층에 마련된 전시실에서는 을사늑약, 헤이그특사, 고종이 각국에 보낸 친서 등 관련 자료를 통해 급박하게 돌아갔던 당시 정세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고종황제가 근대국가를 꿈꾸며 건설했던 덕수궁 ‘석조전’ 관람의 기회도 열린다. 정동야행 홈페이지에서 사전신청을 받아 당첨된 80명에게만 특별 공개한다. 석조전에선 특히 탁자, 의자, 옷장 등 조선 왕실에서 실제 사용했던 가구 41점도 볼 수 있다.
이번 정동야행에는 환구단과 덕수궁을 포함해 시립미술관, 정동극장, 주한캐나다대사관, 서울역사박물관,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이화박물관, 순화동천 등 정동 일대 35개 역사문화시설이 동참한다. 이들 시설은 정동야행 일정에 맞춰 오후 10시까지 야간 개방을 하고 대한제국과 근대문물을 소재로 공연, 전시, 특강을 펼친다.
평소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는 시설도 축제 땐 특별히 문을 연다. 아름다운 한옥과 정원을 품고 있는 성공회 성가수녀원은 13일 오후 2시~4시, 19세기 양식의 옛 공사관 건물과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영국식 정원이 있는 주한 영국대사관은 오후 3시~5시 사전신청자들에게 공개된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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