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이란 핵 합의 불인증을 선언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015년 어렵게 매듭이 지어진 국제사회와 이란 간 합의가 끝내 파기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9일(현지시간) 웬디 셔먼 전 미 국무부 정무차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에 관한 굉장히 큰 실수를 하려 한다’는 제하의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이 테러리즘을 지원하고, 시리아와 예멘에 간섭한다는 이유 등을 들며 핵 합의가 미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려는 것 같다”며 “하지만 이란의 이런 행동들은 핵 합의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이 핵 합의를 준수하고 있고, 미국의 주요 각료들도 공공연하게 이란이 핵 합의를 지키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만 반대로 이야기하고 있음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이어 “이런 결정(핵 합의 불인증)은 미 외교 정책의 영향력을 감소시킬뿐더러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이라며 “예측불가능성을 협상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전쟁과 평화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신뢰와 확실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언급했다.
골람 알리 코쉬루 주 유엔 이란 대사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코쉬루 대사는 전날 ‘이란 핵 합의에 대한 잘못된 추정’이라는 제목의 NYT 기고를 통해 “핵 합의를 통해 핵 프로그램과 관련 없는 이란의 정책에 대해서도 통제하려고 하는데,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다”며 “핵 합의는 다른 지정학적 문제와는 별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비정부기구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 역시 우려를 드러냈다. 베아트리체 핀 ICAN 사무총장은 이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이 핵 합의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를 보지 못했다”며 “핵 합의 파기는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미 정부는 계속해서 이란과의 핵 합의를 승인하고 합의를 유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핵 합의에 참여한 각국도 기존 핵 합의안을 지지한다며 일제히 우려를 표명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란의 핵 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핵 합의안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총리실은 성명을 내고 “이 협정으로 향후 10년 이상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할 가능성이 제거됐으며, 영국은 지역 안보를 위해 이 협정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독일의 지그마어 가브리엘 부총리도 이날 베를린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북한 독재 정권이 핵무기 개발을 단념시키려는 국제 협정에 합의할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며 이란과의 핵 합의 유지를 강조했다.
이란 핵 협정은 2015년 7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등 6개국과 이란이 합의한 것으로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대신 이란에 가해진 각종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12일 이란의 핵 합의 준수 불인정을 선언하고, 의회가 이란에 대한 제재 재개를 결정하면 사실상 핵 합의는 폐기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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