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5월. LG는 시즌 개막 한 달 만에 지휘봉을 내려 놓은 김기태 감독의 대안 찾기에 급히 나섰다. 조계현 당시 수석코치에게 감독대행을 제안했지만 거부했고, 김성근 당시 고양 원더스 감독도 고사했다.
세 번째로 LG가 떠올린 카드가 양상문 당시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었다. LG가 양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면서 기대했던 건 단기간에 팀 분위기를 추스를 수 있는 리더십이었다. 어렵게 암흑기를 뚫고 나오게 한 김기태 감독에게 얻은 교훈을 통해 다년간의 LG 코치 경험과 해설위원으로 명망을 쌓은 양 감독에게 비슷한 리더십의 연속성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었다. 김기태 감독과 같은 ‘형님 리더십’이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선수들에게 신임을 얻고 선수단 전체를 하나로 끌고 갈 수 있는 지도력을 원했다. 백순길 전 LG 단장도 “우리 팀에서 4년간 계셨고, 우리 선수들과 코치들과의 관계도 원만해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선임 배경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유니폼을 입은 양 감독과 선수들 사이엔 급격하게 벽이 생겼다. 자연스러운 신구조화보다 급진적인 리빌딩을 택했던 양 감독은 베테랑 선수들의 공감대를 얻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새로 발탁한 선수들에게 절대적 신임을 얻지도 못했다. 주전과 벤치, 1군과 2군을 밥 먹듯 오가는 혼돈 속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고, 팀 분위기 위축의 주범으로 몰린 베테랑들은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린 선수들의 눈치를 보는 진풍경이 벌어졌으며 팀의 구심점은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가교 역할을 해야 할 일부 코치의 고압적인 태도와 월권으로 소통의 벽은 꽉 막혔다.
올 시즌 이정후에게 밀려 벤치 신세가 된 넥센 이택근은 “난 경기에 못 나가도 할 말이 없다. 오히려 감독님께서 너무 미안해하신다”고 웃으며 말한다. 27명만 1군에 두고 단 9명만 주전으로 써야 하는 감독이 60명이 넘는 선수단 전체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또 감독의 고유 권한인 선수 기용에 대해서 선수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절대 다수의 선수들이 믿고 따를 만한 공감대는 형성되어야 한다. 그래서 감독에게는 ‘지장’이든 ‘덕장’이든, ‘카리스마’든 ‘형님 리더십’이든 확실한 색깔이 필요한 법이다.
올 시즌엔 실패했지만 재임 4시즌 간 두 차례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결과만 놓고 보면 재계약 명분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LG가 그보다 중요하게 판단했던 건 선수단 장악력이었다. 양 감독의 ‘집권 4년’에 대한 냉정한 평가이며 이는 결정적인 재계약 포기 사유로 알려졌다. 양 감독은 정규시즌 최종전인 지난 3일 부산 롯데전을 앞두고 선수들을 소집했다. 그는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날이다. 우승 한번 시켜보겠다고 왔는데 이렇게 떠나게 돼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금 빨리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했더라면 어땠을까.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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