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같았던 열흘간의 추석 연휴는 끝났지만, 가을 날을 흥겹게 만들어줄 또 다른 열흘간의 축제가 기다리고 있다. 22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가 12~21일 부산시 영화의전당과 CGV 센텀시티,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등 5개 극장에서 열린다. 올해는 76개국 영화 300편이 관객을 찾아온다. 부산에서 세계 최초 상영되는 월드 프리미어 작품이 99편(장편 75편, 단편 24편), 자국 이외 나라에서 최초 상영되는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작품이 31편(장편 26편, 단편 5편)이다.
열흘 내내 영화의 바다에 풍덩 빠져 있으면 좋으련만, 생업과 학업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바쁜 일상에 짬을 내 부산영화제 나들이를 계획 중인 관객을 위해 14일과 15일 주말 이틀간 볼 만한 영화를 상영 시간대별로 추천한다.
14일(토)
오전 10시대=파티 아킨 감독의 영화 ‘인 더 페이드’(오전 10시ㆍ영화의전당 하늘연 극장)로 스크린 나들이를 시작하면 어떨까. 네오나치주의자들의 폭탄테러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여인 카티아의 법정 싸움을 그린 작품이다. 2000~2007년 독일 내 터키 공동체를 대상으로 자행된 극우주의자들의 테러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졌다. 생의 의미를 잃고 절망에 빠진 카티아를 힘있게 연기한 독일 배우 다이안 크루거는 이 영화로 올해 칸국제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
오후 1시대=올해 최고 기대작 ‘마더!’(오후 1시 30분ㆍ롯데시네마 센텀시티)를 놓쳐서는 안 되겠다. 교외의 저택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부부의 집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의문투성이 사건을 그린 스릴러 영화다. ‘블랙스완’과 ‘더 레슬러’를 연출한 명장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신작으로, 제니퍼 로렌스와 하비에르 바르뎀, 미셸 파이퍼, 애드 해리스 등 화려한 캐스팅이 눈길을 끈다. 애러노프스키 감독은 부산을 방문해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GV)에도 참석한다.
만약 ‘마더!’ 티켓 예매에 실패했다면, 특별기획 프로그램으로 초대된 스즈키 세이준(1923~2017) 감독의 1960년대 대표작인 영화 ‘동경방랑자’(오후 1시ㆍ영화의전당 소극장)를 추천한다. 스즈키 감독은 일본 B급 영화의 거장으로, 훗날 왕자웨이(왕가위), 우위썬(오우삼), 쿠엔틴 타란티노 등 여러 감독에게 영향을 끼쳤다.
오후 4시대=‘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이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와 함께 촬영한 ‘나비잠’(오후 4시 30분ㆍ영화의전당 하늘연 극장)이 상영된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애소설 작가 료코(나카야마 미호)와 한국인 유학생 찬해(김재욱)의 사랑을 담은 멜로물로, “자존을 지키면서 사랑의 기억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한 여자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남동철 프로그래머).
배우 출신 방은진 감독의 신작 ‘메소드’(오후 5시ㆍCGV 센텀시티)는 연기파 배우 재하(박성웅)와 아이돌 스타 영우(오승훈)가 동성애 연극에 함께 출연하면서 겪는 감정의 혼란과 관계의 파국을 그렸다.
오후 8시대=미국 할리우드 스타 맷 데이먼의 ‘다운사이징’(오후 8시ㆍ롯데시네마 센텀시티)이 관객을 만난다. 인구 과밀로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인간을 손가락 크기로 줄인다는 독특한 발상을 담았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이다.
홍콩영화 팬들을 가슴 뛰게 할 ‘맨헌트’(오후 8시ㆍ영화의전당 하늘연 극장)도 출격한다. ‘영웅본색’의 우위썬 감독이 일본영화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를 리메이크했다. 한중일의 유명 배우인 장한위(중국)와 후쿠야마 마사하루(일본), 하지원(한국)이 출연해 제작 초기부터 화제를 모았다.
15일(일)
오전 10시대=올해 부산영화제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 멜로영화로 하루를 시작해보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로 한국에도 친숙한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나라타주’(오전 10시ㆍ롯데시네마 센텀시티)가 아침부터 연애세포를 자극한다. 고등학교 교사와 학생으로 처음 만나 수년 뒤 재회한 두 주인공의 애틋한 감정을 섬세한 연출과 감각적인 화면에 담았다.
오후 1시대=‘디자이너’(오후 1시 30분ㆍ롯데시네마 센텀시티)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연상시키는 베트남영화다. 베트남 사이공(현 호찌민)을 무대로, 9대째 운영되는 아오자이 의상실의 후계자가 1969년과 2017년을 오가며 아오자이의 아름다움에 눈뜨는 이야기를 유쾌한 소동극으로 풀어낸다. 화려한 베트남 전통의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한국엔 아직 낯선 베트남영화에 한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친절한 안내자가 될 듯하다.
오후 4시대=부산영화제는 아시아 신인감독들의 등용문이기도 하다. 한국영화의 미래를 만날 기회도 놓쳐선 안 되겠다. 김의석 감독의 장편 데뷔작 ‘죄 많은 소녀’(오후 4시 30분ㆍ영화의전당 중극장)도 그 중 하나다. 한 여학생이 실종된 뒤 그의 어머니는 딸과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낸 친구 영희를 의심하고 영희는 왠지 모를 죄책감 속에 친구들로부터 마녀사냥을 당한다. 이성과 관용이 통용되지 않는 한국사회의 광기를 포착한, 예리한 시선이 돋보인다.
오후 8시대=‘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오후 8시ㆍ영화의전당 야외극장)가 깊어가는 가을밤을 촉촉한 감성으로 물들인다. 야외극장에서 상영돼 선선한 가을바람까지 곁들여질 예정이다. 섬뜩한 제목과는 달리, 소년과 소녀의 애틋한 사랑과 성장기를 담은 뽀송뽀송한 청춘영화다. 친구를 만들지 않는 소년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소녀의 투병일기를 주우면서 시작되는 둘만의 우정과 비밀스러운 추억이 따뜻한 웃음을 자아내고, 소년의 가슴 아린 고백에 뭉클해진다. 아름다운 영상미만큼 여운이 긴 영화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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