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월드컵 아프리카 3차 예선이 열린 9일(한국시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보그 엘 아랍 스타디움. 후반 추가시간 5분, 이집트 모하메드 살라(25ㆍ리버풀)의 페널티킥이 상대편 콩고의 골망을 가르자 8만5,000여 관중들이 가득 들어찬 경기장은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이집트가 2-1로 콩고를 따돌리고 1990년 이탈리아 대회 이후 28년 만에 월드컵 본선 행을 확정 짓는 순간이었다. 엑토르 쿠페르(61) 이집트 축구대표팀 감독도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는 경기 후 “월드컵 본선으로 향하는 길에서 인생 최고의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쏟아지는 비판에 혈압 약까지 먹어야 할 정도였으니까”라고 놀란가슴을 쓸어 내렸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최다 기록인 7회 우승을 달성하는 등 검은 대륙을 평정하던 이집트였지만 월드컵 무대만큼은 넘기 힘든 산이었다. 역대 본선 진출은 1934년 멕시코 대회와 1990년 이탈리아 대회가 전부였다.
번번이 예선 문턱에서 미끄러지던 이집트에게도 2010년 남아공 대회를 앞두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최종예선에서 알제리와 승점ㆍ골득실ㆍ득점ㆍ상대전적이 모두 같아 단판 승부 플레이오프까지 치렀고, 끝내 0-1로 지고 말았다. 역시 1990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월드컵 본선에 나서지 못한 알제리였기에 당시 승부는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했고, 경기장 밖에서는 양국 팬들간 벌어진 폭력사태 때문에 급기야는 이집트 외교부가 카이로 주재 알제리 대사를 불러 항의 하는 등 외교분쟁으로 까지 치달았다.
이집트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다시 도전했지만 최종예선에서 가나에 밀려 또 한 번 눈물을 흘려야 했다. 월드컵 경기가 풀리지 않자 2006, 08, 10년 3연패를 달성한 네이션스컵에서 마저 2012년부터는 3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하며 이집트 축구는 총체적 난국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2015년 아르헨티나 출신 쿠페르 감독을 ‘우승 청부사’로 영입해 전열을 가다듬었다. 인터 밀란, 발렌시아 등 유럽 빅 클럽을 이끈 베테랑 감독에게도 월드컵 본선 도전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살라가 ‘해결사’를 자처했다.
잉글랜드 명문 리버풀에서 뛰며 시즌 리그 4골을 터뜨린 그는 A매치 56경기에서 32골을 기록한 이집트의 대표적 스트라이커다. 특히 9일 콩고와의 5차전에서 추가시간 페널티킥 결승골 포함 이집트의 2골을 모두 책임진 것을 비롯해 3차 예선 5경기에 5골을 터뜨리며 본선행을 이끌었다.
30여 년간의 기다림 끝에 월드컵 본선에 나선 이집트 국민은 환호했다. 수도 카이로에선 거리에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국기를 흔들었고, 이집트 시민혁명의 성지로 불리는 타흐리르 광장도 축구 열기로 뒤덮였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선수 당 150만 이집트 파운드(약 1억원)의 포상금 수여를 지시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두 번의 월드컵 본선에서 남긴 결과는 2무 2패. 오랜 기다림 끝에 월드컵 갈증을 푼 이집트가 본선 무대에서도 제대로 된 한풀이를 할 지 주목된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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