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악의 인명 테러로 기록된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이 미궁에 빠졌다. 사건 발생(1일) 일주일이 지나고도 580여명을 살상한 60대 테러범의 뚜렷한 범행 동기가 드러나지 않으면서 언제든 고립된 개인에 의한 ‘묻지마 총기 테러’가 재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미 경찰 당국은 이번 사건을 범인 스티븐 패덕(64ㆍ사망)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린 상태다. 라스베이거스 클라크카운티의 케빈 C.맥머힐 경찰 부국장은 6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범행 전 패덕의 (호텔) 방에 들어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세컨드 슈터(공범)’는 없다”고 단언했다. 사건 초기 패덕의 휴대폰 충전기가 발견되지 않은 점, 총을 난사한 만델레이베이 호텔 32층 객실 창문 2곳이 파손된 점 등을 들어 한 때 공범 가능성이 불거졌으나 공모 여부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로는 불충분했다.
일단 패덕이 치밀한 시나리오 아래 테러를 기획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CBS뉴스는 7일 “패덕이 머문 호텔방에서 음악축제에 참석한 군중을 겨냥해 사격 거리와 총탄 궤도를 계산한 자필 메모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그가 명백히 인명 살상을 목적으로 총기 테러를 준비한 정황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2만2,000명을 상대로 총을 난사한 배경, 즉 패덕의 범행 동기와 관련해선 여전히 추측만 무성하다. CNN방송은 “보통 대규모 총기 범죄가 발생하고 하루, 이틀 뒤면 메모나 일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 등을 분석해 범인의 정신상태를 엿볼 수 있는데 1,000여건의 단서 중 감시망에 포착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 메트로폴리탄경찰서의 조 롬바르도 서장은 “수십년 동안 무기ㆍ탄약을 사들이고 은밀하게 지내 온 패덕의 삶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며 범행 동기 규명에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가장 큰 모순은 그가 총기 테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부유한 은퇴자라는 점이다. 회계사 출신인 패덕은 수십억원을 보유한 부동산 재력가로 알려졌다. 1980년대부터 적어도 9건의 부동산 거래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성공한 도박꾼’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패덕은 하루 최대 1만달러를 베팅하는 고위험 도박을 즐기면서도 수만달러를 따는 등 수완이 좋았다”며 “오만하지만 체스선수처럼 분석적이고 매우 똑똑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때문에 수사당국은 패덕의 정신질환 여부를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 ABC뉴스는 소식통을 인용해 “패덕은 타인과 상호작용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과거 대량 학살 테러범들에게서 나타난 반사회적 특성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연방수사국(FBI)과 행동분석가들은 패덕 주변 100여명을 인터뷰해 이런 결과를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특히 지난해 10월 이후 범인이 총기 33정을 집중 구매하고 이 기간 그의 도박 규모가 커진 점 사이에 모종의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범인의 동거녀 마리루 댄리(62)도 경찰 조사에서 “최근 몇 달간 패덕의 정신건강을 우려했다”고 진술했다. CNN은 “패덕이 어릴 때 은행 강도 혐의로 복역한 아버지를 당시 사법당국은 ‘자살 경향이 농후한 위험 인물’로 규정했다”면서 유전적 정신 이상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숨진 희생자 가족이 패덕의 재산을 동결해 달라는 첫 소송을 법원에 냈다. 패덕의 총탄에 사망한 존 피펜의 변호사는 클라크카운티 법원에 그의 재산 동결 청원서를 제출했고, 법원은 검찰에 부동산 내역 등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패덕의 동거녀나 형제에게 재산이 상속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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