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방송 편성이 줄어드는 명절 안방극장은 파일럿 프로그램 경연장이다.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은 프로그램은 정규 편성이라는 ‘포상’을 받고, 시청자의 외면을 받은 새 포맷은 시간 속에 묻힌다. 파일럿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강점은 실험성과 참신함. 하지만 올해 추석 연휴 동안 선보인 파일럿 예능프로그램은 대체로 실험정신이 떨어지고, 진부하기만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영방송 파업 여파로 양적으로 일단 부족했다. MBC는 편성표를 추석 특선 영화로 주로 채웠고, KBS, SBS, 케이블 채널 몇 곳이 새로운 예능 포맷을 맛보기로 내놓았다. 하지만 기존 프로그램과 비슷한 형식과 주제들이 대부분이어서 ‘베끼기 파일럿’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KBS는 8개의 파일럿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해 MBC의 공백을 대신했다. 그러나 KBS2 ‘혼자 왔어요’, ‘줄을 서시오’ 등은 케이블채널의 기존 예능프로그램과 비슷한 형식이라 기시감을 준다는 혹평을 받았다. 여행 예능프로그램을 표방한 ‘혼자 왔어요’는 두 남녀가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이를 지켜보는 패널들이 남녀 출연자의 마음을 추리하는 과정을 담았다. 채널A ‘하트시그널’과 비슷하다는 의견이다. ‘줄을 서시오’는 MC들이 서울 맛집을 방문해 시민과 함께 음식을 평가한다는 콘셉트로 JTBC ‘밤도깨비’를 따라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시청자의 호평을 끌어낸 프로그램도 있었다. SBS ‘내 방을 여행하는 낯선 이를 위한 안내서’(‘내 방 안내서’)는 국내 톱스타와 해외 유명인이 방을 바꿔 생활하면서 각 나라의 문화와 생활 모습을 서로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전 국가대표 체조선수 손연재와 혜민 스님, 배우 박신양 등 기존 예능프로그램에서 보기 힘든 유명인들을 섭외해 명절 방송도 전에 10부작 편성을 일찌감치 확정 지었다.
KBS2 ‘1%의 우정’은 방송인 배정남과 안정환 등 상반된 성향을 지닌 연예인들이 함께 하루를 보내는 내용을 그렸다. 연예인의 개인사 등 솔직한 모습이 드러나면서 5일 시청률 6.9%(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했다. ‘1%의 우정’의 방송 관계자는 “진지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거나 어린아이처럼 노는 모습 등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거칠고 투박한 스타들의 면모가 웃음 포인트”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청자의 호평을 받은 두 프로그램 역시 기존의 관찰 예능프로그램 형식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MBC ‘나 혼자산다’와 ‘복면가왕’, ‘마이리틀텔레비전’ 등 인기 프로그램은 출발이 명절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 참신한 기획으로 새로운 유행을 선도했다. 하지만 갈수록 파일럿 프로그램이 기존 프로그램 따라하기에 그친다는 비판이 최근 쏟아졌다. 올해는 양대 공영방송 KBS와 MBC의 파업 장기화로 예능프로그램 제작 인력 부족이라는 악재까지 맞았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새 포맷이 발굴되지 않은 상황을 감안하면 먹방, 여행 예능프로그램이 하반기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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