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대화 무용론을 내세워 강경한 대북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속 대응과 관련해선 모호한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군사 옵션을 암시하는 듯한 화법으로 북한을 위축시키려는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지만, 그 효과를 두고선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 전략이 북한의 도발 수위에 따라 실제 군사 타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늘고 있어 한반도를 둘러싼 전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전임 대통령들과 그 정부들은 25년간 북한과 대화해 왔다. 합의가 이뤄졌고 막대한 돈도 지불됐으나 효과가 없었다”며 “(북한은)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합의를 어겼고 미국 협상가들을 바보로 만들었다”고 대화 무용론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유감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만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 한 가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추가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만 외신들은 군사적 압박에 방점을 찍는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들로 미뤄 짐작해 이를 군사적 옵션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오후에도 미국 기독교 케이블 방송인 TBN ‘허커비 쇼’에 출연해 자신의 주장을 반복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수십억달러를 북한에 줬다”며 “이 문제는 25년 전에 해결됐어야 한다”고 밝힌 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북한 독재자들 가운데서도 최악”이라고 공격했다.
지난 정부의 북핵 협상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1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대화 시도를 “시간 낭비”라며 하루 만에 뒤집은 데 이은 것으로 재차 대화 무용론의 쐐기를 박은 것이다. 이처럼 협상을 배제하면 남는 것은 경제 봉쇄를 통해 북한의 백기 투항을 유도하는 전면적 제재ㆍ압박과 다름아닌 군사 타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군사 타격에 대해 “선호하지 않지만 완전히 준비돼 있다”거나 “두 번째 옵션” 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제재ㆍ압박 이후의 최종적 해법으로 남겨두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추석 연휴 기간에 들어선 이후 군사 타격이 임박한 듯한 수수께끼 같은 말로 대북 경고 수위를 한층 격상시켰다. 그는 5일 백악관에서 군 수뇌부와의 회의 뒤 단체 사진 촬영 때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며 기자들에게 먼저 질문을 던진 뒤 “아마도 폭풍 전의 고요(the calm before the storm)다”고 말해 여러 추측을 낳았다. 백악관은 이후 “대통령이 무엇을 할지 미리 말하지 않는다”며 “지켜보자”는 반응만 보이고 있다. 회의 중엔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는 독재정권이 미국과 우리 동맹국들에 상상할 수 없는 인명손실을 가하겠다고 위협하는 걸 용납할 수 없다”라며 군 수뇌부를 향해 “여러분이 내게 폭넓은 군사옵션을 제공하길 기대한다”고도 했다.
‘폭풍’에 이은 ‘단 한 가지’ 발언은 곧바로 대북 군사 타격을 연상시키지만 시기상 당장 이를 실행할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 11월 베이징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갖는 데다, 중국이 최근 대북 제재에 전향적으로 나서면서 제재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잇따르는 상황이다. 중국의 협력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극단적 마찰을 빚을 게 뻔한 군사 타격을 실행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치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전략적 모호성을 극대화하는 미치광이 전략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리얼리티 쇼 스타 출신임을 고려해 “잠재적 전쟁을 리얼리티 쇼의 클리프행어(cliffhangerㆍ연속극의 흥미를 끌기 위해 마지막 장면에 배치하는 아슬아슬한 극적 장치)처럼 다룬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단순히 연막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군사 옵션을 실행 가능한 수단으로 준비하고 있어 그간 보인 특유의 엄포성 수사와는 다르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이 괌이나 하와이 등 미국의 영토를 실제로 위협하거나 태평양상 수소폭탄 실험 등에 나선다면 미사일 기지 등에 대한 선제 타격에 돌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비롯한 대북 강경파들은 북한이 핵무기 야욕을 꺾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결국엔 군사적 해법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뉴스위크 국제뉴스 편집자를 지낸 마이클 허시는 6일 워싱턴포스트(WP) 기고에서 쿠바 미사일 위기 사례를 들며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전쟁 문턱으로 가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외교가 힘을 발휘했다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심각한 상황에서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트럼프식 ‘벼랑 끝 전술’이 의외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치광이 전략이 단지 공허한 수사로 비치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 더욱 심각해져야 한다는 취지의 주문도 내놨다.
이에 반해 긴장이 극도로 조성된 상황에서 구사되는 트럼프의 대북전략이 북한의 오판을 야기해 한반도에 예상치 않은 확전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을 통해 툭툭 내던지는 방식을 두고선 “사람들이 이제 국가 정책이 아니라 ‘관심을 끌려는 행동’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리언 파네타 전 국방부 장관)며 무책임한 허세라는 시각도 나오는 등 양극단의 반응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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